우주와 중간에서 만나기: 양자물리학과 물질-의미의 얽힘

우주와 중간에서 만나기 (서문, 서론) – 캐런 바라드 (부깽 옮김)


서문과 감사의 글

이 책은 얽힘(entanglements)에 관한 것이다. 얽힘이란 단순히 독립된 개체들이 서로 결합하거나 뒤엉켜 있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독립적이고 자기완결적인(self-contained) 존재가 부재함을 의미한다. 존재는 개체 혼자만의 일이 아니다. 개체는 상호작용 이전에 이미 주어진 것이 아니라, 얽힌 내재적 관계맺음(intra-relating) 속에서, 그리고 그 일부로서 창발(emergence)한다. 그러나 창발은 단 한 번으로 완결되는 사건이거나, 외부의 시공간적 기준에 따라 선형적으로 진행되는 과정이 아니다. 오히려 시간과 공간은 물질과 의미처럼, 각각의 내재-작용(intra-action)((이는 캐런 바라드 행위적 실재론의 핵심 개념으로, 종종 ‘인트라액션’으로 음차되거나 ‘내부-작용’으로 번역된다. 그러나 ‘상호-작용(inter-action)’이 이미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개체들 사이의 관계를 전제한다면, ‘내재-작용(intra-action)’은 관계가 개체보다 선행하며 개체를 구성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여기서 ‘내재(內在)’는 ‘내부(內部)’와 구별된다. ‘내부’가 경계로 구획된 공간을 가리킨다면, ‘내재’는 존재가 관계라는 맥락 속에서 비로소 성립함을 뜻한다. 즉, 행위성은 상호작용 이전에 선행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재-작용 속에서 함께 드러난다. 따라서 ‘내재-작용’이라는 번역은 실체보다 관계를 우선하는 바라드의 존재론적 전환을 드러낸다. 반면 ‘내부-작용’은 이미 정해진 실체와 경계를 전제하는 오해를 낳을 수 있다. 이하 본문에서의 모든 ‘intra-action’은 이러한 이유로 ‘내재-작용’으로 옮긴다.))을 통해 비로소 생겨나며 반복적으로 재구성된다. 따라서 창조와 재생, 시작과 귀환, 연속과 불연속, 여기와 저기, 과거와 미래는 절대적 기준에서 더 이상 구분될 수 없다.

그러므로 감사의 글을 쓴다는 것, 곧 무언가가 일어나도록 도운 이들과 그들의 기여를 인정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감사의 글은 저자의 기억 속에 보존된 장면들을 훑어 주요 순간과 인물을 골라 종이에 옮겨 적는 단순한 행위가 아니다. 기억은 개별적인 뇌의 주름 속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주 안에 새겨진 시공간-물질의 접힘들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것은 우주가 물질화(mattering)((mattering은 단순한 ‘물질화(materialization)’가 아니라, 물질과 의미가 얽혀 함께 생성되는 과정을 가리킨다. 이는 matter가 명사로서 ‘물질’과 동사로서 ‘중요하다’라는 이중 의미를 동시에 불러내려는 선택이다. 이지선(2022)은 이를 “물의 빚기”로 번역하면서, 바라드의 개념이 물질성과 의미의 얽힘(entanglement)을 강조하는 전략임을 지적한다. 본문에서는 ‘물질화’로 번역하되, 이 개념에는 이미 ‘의미화’의 차원이 내재해 있으므로 ‘물질-의미화’로 이해할 수 있다.
이지선, 「캐런 바라드의 행위적 실재주의에서 물질과 실재」, 『한국여성철학』 제38권 (2022): pp. 140-144. 참고.))하는 과정에서 접혀 발현되는 절합((articulation(절합)은 서로 다른 요소들이 특정한 관계 속에서 배치되고 형성되며 드러나는 과정을 가리킨다.))이다. 기억은 결코 고정된 과거의 기록이 아니며, 완전히 지워지거나, 덧쓰이거나, 되찾아 소유할 수 있는, 마치 소유물처럼 주어지거나 빼앗길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다. 기억하기는 단순히 일련의 순간들을 재생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개별적 존재를 넘어서는 과거와 미래를 살려내고 재구성하는 행위이다. 기억하기와 다시-인식하기(re-cognizing)는 우리의 책임을 줄여주거나 덜어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모든 내재-작용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속한 얽힘과 책임을 확장한다. 과거는 결코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꾸러미나 스크랩북, 혹은 하나의 감사의 글처럼 깔끔히 포장되어 마무리될 수 없다. 우리는 결코 과거를 떠날 수 없으며, 과거 또한 결코 우리를 놓아주지 않는다.

그래서 이 감사의 글은 저자가 책을 쓰는 과정을 회상하며 도움을 준 이들의 이름을 나열하는 전통을 따르지도, 또 완전히 벗어나지도 않는다. 이 책의 시작을 특정할 수 있는 시점은 존재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 프로젝트를 이끈 ‘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글쓰기는 개별적인 ‘나’나 여러 ‘나’들의 집단조차 그 공로를 오롯이 자기 것으로 주장할 수 있는 과정이 아니다. 어떤 중요한 의미에서, 내가 이 책을 썼다기보다는 이 책이 나를 썼다고 해야 한다. 아니, 오히려 ‘우리’는 서로를 내재-작용적(intra-actively)으로 써낸 것이다. (여기서 ‘내재-작용적’이라고 한 것은 통상적인 ‘상호작용적’과 구분하기 위해서다. 글쓰기는 저자에서 페이지로 흘러가는 일방향적 창조 행위가 아니라, ‘책’과 ‘저자’가 반복적이고 상호구성적으로 서로를 만들어가고 다시 만들어가는 실행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내 행위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행위성’ 자체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인간이든 비인간이든 개별적 주체 안에만 자리한다고 가정하는 통념을 문제 삼는 것이다. 더 나아가, 얽힘은 저자-책 같은 단순한 짝짓기로 설명될 수 있는 고립된 공동생산이 아니다. 친구들, 동료들, 학생들, 가족, 다양한 학문 제도와 전공 분야들, 동부와 서부 해안의 숲과 시냇물과 바닷가, 이른 아침 시간의 경이로울 만큼 고요하고 선명한 평화, 그리고 그 외 수많은 것들이 이 ‘책’과 그 ‘저자’를 함께 구성해 온 일부였다.

나는 어머니가 이 글을 읽고 또다시 내가 일을 불필요하게 복잡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미소가 지어진다. 그녀는 내가 또 지나치게 생각이 많다며, 다른 사람 같으면 그냥 요점만 말하고, 그동안 도움 준 이들이 모두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감사를 전했을 거라고 할 것이다. 한편으로 어머니 말이 옳기도 하다. 알아들을 수 없는 감사(recognition)를 전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러나 내 존재 깊은 곳에 뿌리내린 정의에 대한 열렬한 갈망, 어머니에게서 물려받고 적극적으로 길러주신 바로 그 열정과 갈망 때문에, 단순히 해야 할 말을, 마치 자명한 일인 양 해버리고 끝낼 수 없는 것이다. 정의란 승인과 인정(recognition) 그리고 사랑 어린 관심을 수반하지만, 한 번으로 영원히 성취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해답은 없다. 오직 각각의 만남, 각각의 내재-작용에 열려 있고 살아 있으려는 지속적인 실천만이 있을 뿐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응답할 수 있는 능력(ability to respond), 곧 우리의 책임(responsibility)((‘책임(responsibility)’은 ‘응답할 수 있는 능력(ability to respond)’과 직접 대응한다. 바라드는 이를 단순한 도덕적 의무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응답하는 능력으로 재해석한다. 따라서 ‘책임’에는 ‘응답-능력(response-ability)’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이 개념은 도나 해러웨이의 작업에서 더욱 구체화된다. 해러웨이는 『종과 종이 만날 때(When Species Meet, 2008)』 p. 71에서 “응답은 응답-능력(response-ability), 곧 책임(responsibility)과 함께 성장한다”고 말한다. 해러웨이에게 책임은 인간만의 고유한 특성이 아니라, 세계 속 모든 존재가 공유하는 관계적 역량이다. “실험실의 노동자로서의 동물들, 그리고 그들 세계 속의 모든 동물들은 사람들과 똑같은 의미에서 ‘응답-가능(response-able)’하다.” 즉, 책임이란 ‘내재-작용’ 속에서 정교하게 짜여지는 관계이며, 그 속에서 주체와 객체가 함께 생성된다. 해러웨이는 또한 응답의 능력(the capacity to respond)이 모든 당사자에게 대칭적이거나 동일한 형태로 나타날 것이라 기대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응답은 자기-유사성의 관계에서는 출현할 수 없으며, 차이와 비대칭 속에서만 의미 있는 관계가 형성된다. 이러한 ‘응답-능력’은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어떻게 주목하고 반응할 것인가’라는 점에서, 애나 칭(Anna Lowenhaupt Tsing)의 ‘알아차림의 기술(arts of noticing)’, 톰 반 두렌(Thom van Dooren)의 ‘주의기울임의 기술(arts of attentiveness)’과도 맞닿아 있다. 세 접근 모두 세계와의 윤리적 관계를 수동적인 규범의 준수가 아닌, 적극적이고 창의적인 실천 능력의 문제로 재정의한다는 공통된 철학적 기반 위에 서 있다. 보다 자세한 논의는 현남숙, 「인류세의 위기와 다종 간 지식의 요청」(2025)을 참고하라.))을 사용하여 일깨우고, 정의롭게 살아갈 새로운 가능성들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다. 세계와 그것의 생성(becoming) 가능성은 매 만남 속에서 다시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우리는 ‘누가 그리고 무엇이 중요한 존재가 되는가(who and what come to matter)’를 구성하는 데 있어서 우리의 역할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죽음으로 번성하는 듯 보이는 이 세계에서, 정의의 가능성을 살아 있게 하는 만남의 실천에 무엇이 수반되는지를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죽은 존재들과 아직 태어나지 않은 존재들을 포함해 각 존재의 고통에 어떻게 깨어 있을 수 있을까? 과거를 끝난 것으로 미래를 우리의 것이 아니거나 오직 우리의 것이라고 여기는 사고방식을 어떻게 교란할 수 있을까? 물질화의 문제, 그리고 물질·공간·시간의 본성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과 관심은 비의적(esoteric) 사색으로 이루어진 사치가 아니다. 물질화와 그것이 지닌 정의의 가능성과 불가능성은 우주가 생성되는 과정 속에 내재된 본질적 부분이다. 정의롭게 살라는 초대는 존재의 가장 근본적인 물질 속에 새겨져 있다. 그 초대에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는 물질의 본성에 관한 물음이자 동시에 응답과 책임의 본성에 관한 물음이다. 정의에 대한 열망은, 어떤 개인이나 집단을 넘어서는 더 큰 열망이며 이 작업을 추동하는 힘이다. 따라서 이 책은 필연적으로 우리 서로의 연결과 책임, 곧 얽힘(entanglements)에 관한 것이다.

나는 수많은 탁월한 존재들(beings)과 얽힐 수 있었던 헤아릴 수 없는 큰 행운을 누렸다. 그들은 나를 지탱하고 길러 주었으며 우정, 친절, 온정, 유머, 사랑, 격려, 영감, 인내, 지적 교류의 기쁨, 귀중한 피드백, 도전의 자극, 세부에 대한 세심함, 사유에 대한 사랑을 선물해 주었다. 나의 감사는 종이 몇 장에 다 적을 수 없을 만큼 많은 존재들을 향해 있다. 단순한 나열로는 이러한 얽힘을 온전히 표현할 수 없다. 나는 이 감사의 글에서 자신의 이름을 찾지 못해 실망할 누군가(과거든 미래든, 내가 아는 사람이든 혹은 알지 못하는 사람이든)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살아 있고 변화하는 현상 안에, 손에 쥘 수 있는 단순한 사물(object)이 아니라 마땅히 ‘책’이라 부를 만한 것 안에 이미 새겨져 있음을 이해해 주기를 바란다.

무엇보다도, 나는 바나드 칼리지(Barnard College), 포모나 칼리지(Pomona College), 럿거스 대학교(Rutgers University), 마운트 홀리요크 칼리지(Mount Holyoke College), 그리고 캘리포니아 대학교 산타크루즈 캠퍼스(University of California, Santa Cruz)의 학생들에게 감사드린다. 나는 여러분으로부터 내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배웠고, 여러분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나에게 주었다.

나는 새롭게 개척된 영역의 초기 탐사에 함께해 준 엘리자베스(제이) 프리드먼과 템마 카플란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 누가 알았겠는가? 바나드 칼리지에 독특한 전통의 물리학 연구실을 설립한 물리학자 사무엘 데본스(어니스트 러더퍼드의 제자)는 의도치 않게 내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었다. 그 연구실에서 가르치고, 실험을 준비하며, 웅장한 오래된 장비들과 씨름하는 과정에서, 나는 실험 장치들의 물질성(physicality)과 그 안에 깃든 사상에 대한 감각을 서서히 길러 나가기 시작했다. (이론)물리학에 대한 정규 교육 어디에서도 그런 감각을 얻을 수는 없었지만, 닐스 보어의 철학-물리학에 대한 지속적이고 자기주도적인 연구가 이 보어 특유의 통찰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나를 준비시켜 준 것은 분명하다. 우리가 지는 가장 큰 빚 중 일부는 다른 시공간에 살았던 이들에게 돌아간다(적어도 그러한 절대적 차이를 외부적 척도로 상정하는 불충분한 개념에 따른다면 말이다). 비록 우리가 실제로 만난 적은 없지만, 수년간 가장 훌륭한 대화 상대가 되어준 닐스 보어에게 감사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큰 불찰일 것이다.

나는 이 여정에서 친구들과 동료들로부터 격려와 지적이고 영적인 자양분이라는 선물을 받아온, 더없는 행운을 누렸다. 그들은 다음과 같다. 앨리스 아담스, 베티나 앱테커, 마리오 비아졸리, 로지 브라이도티, 주디스 버틀러, 로레인 코드, 조반나 디 치로, 카밀라 펑크 엘레하베, 릴라 페르난데스, 낸시 플램, 마이클 플라워, 알리시아 가스파르 데 알바, 루스 윌슨 길모어, B.J. 골드버그, 디나 곤살레스, 앨리스 풀턴, 제이컵 헤일, 샌드라 하딩, 에밀리 호니그, 수 하친스, 데이비드 호이, 조슬린 호이, 마릴린 아이비, 이블린 폭스 켈러, 로리 클라인, 마틴 크리거, 제이 라딘, 마크 랜스, 린 르로즈, 재너 레빈, 로라 리우, 니나 뤼케, 폴라 마커스, 린다 마르틴 알코프, 린 핸킨슨 넬슨, 루팔 오자, 프란시스 폴, 엘리자베스 포터, 라비 라잔, 제니 리어던, 아이린 레티, 진 로젠, 수 로서, 폴 로스, 제니퍼 리센가, 조앤 세퍼스탄, 빅터 실버먼, 카리다드 수자, 바누 수브라마니암, 루시 서크먼, 캐리스 톰슨, 샤론 트라위크, 실라 와인버그, 바버라 휘튼, 엘리자베스 윌슨, 앨리슨 와일리.

나는 여러 장(章)의 초고를 기꺼이 읽고 귀중한 피드백을 건네준 동료들과 친구들에게 특히 큰 빚을 졌다. 그들 가운데는 프레데리크 아펠-마글린, 허브 번스타인, 에이미 버그(Amy Bug), 존 클레이턴, 도나 해러웨이, 조셉 라우스(Joseph Rouse), 그리고 아서 자이언스(Arthur Zajonc)가 있다. 특히 조셉 라우스는 원고 전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인내심 있게 읽으며,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피드백을 보내주었다. 그의 관대함에 깊이 감사드린다. 또한 나의 대학원 세미나 “페미니즘과 과학 연구”에서 함께했던 스카우트 칼버트, 크레시다 리몬 제이콥 메트칼프, 아스트리드 슈라더, 헤더 앤 스완슨, 메리 위버에게도 특별히 감사드린다. 그들은 책 원고의 여러 측면에 대해 영감을 불어넣는 활기찬 토론을 나누어 주었고, 내가 산타크루즈에 도착했을 때 따뜻하게 맞이해 주었다.

나는 조셉 라우스와 도나 해러웨이에게 특히 깊이 감사한다. 그들의 저작이 내게 영감을 주었고, 우리는 서로의 관심사에 대해 내재-작용하며 특별한 기쁨을 나눌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오랜 세월 동안 우정과 아낌없는 지원, 격려, 그리고 통찰력 있고 유익한 피드백을 베풀어 주었다. 이 소중한 친구들은 내 사유와 집필 장치(apparatus)의 필수적인 일부가 되었으며, 그들의 기여는 이루 말할 수 없다. 또한 친구 비키 커비(Vicki Kirby)와의 전율적인 대화로부터 헤아릴 수 없는 도움을 받았다. 프레데리크 아펠-마글린은 내 작업에 대한 변함없는 열정과 확고한 믿음으로, 글쓰기와 내려놓기, 그리고 다시 돌아오기라는 어려운 얽힘의 과정 속에서 나를 지탱해 주었다. 우리의 대화 속에서 필연적으로 드러나던 놀라운 회절 무늬((문맥에 따라 ‘diffraction patterns’를 ‘회절 패턴’ 또는 ‘회절 무늬’로 옮긴다.)) 앞에서 지금도 경외심을 느낀다. 끝으로 내 반려견 로비에게도 진심으로 감사한다. 그는 밤낮으로 해가 바뀌어도 내 곁을 지키며 따뜻함과 사랑을 듬뿍 주었고, 컴퓨터 앞에서 원고를 써 내려가는 동안 나를 산책으로 이끌어 꼭 필요한 숨 고르기를 하게 해 주었다. 그의 복슬복슬한 몸은 이 책의 집필 여정을 거의 함께 완주했다.

나의 부모님, 해럴드 바라드와 에디스 바라드께 헤아릴 수 없는 감사를 드린다. 그분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언제나 나를 믿어 주셨다. 모든 사람 안의 선함을 믿고, 누구에게서나 가장 좋은 면을 끝까지 보려 하셨던 어머니의 흔들림 없는 신념은 이 세상에서 드문 것이며, 내게 깊은 영감을 주었다. 아버지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그는 내가 동네의 어떤 남자아이보다도 더 멀리 야구공을 던지고, 더 정확히 농구공을 골대에 넣을 수 있도록 가르쳐 주셨다. 우리가 함께 공을 주고받던 시간들은 내 삶의 근원적인 페미니즘적 순간들이 되었고, 그 속에서 배운 놀랍도록 유용한 교훈과 기술들은 지금까지도 내 안에 살아 있다. 나는 부모님으로부터 ‘측정’과 ‘가치’의 본질에 관한 생애 최초의 중요한 통찰을 얻었다. 노동계급의 가치 속에서 자라날 수 있었다는 사실을 나는 진심으로 행운이라 생각한다. 그 가치들은 사람의 존엄과 가치를 직업, 업적, 학력, 재산, 혹은 세속적 경험으로 재단하려는 모든 시도를 단호히 거부한다.

로앤 윌슨에게도 깊은 감사를 전한다. 그녀는 이 책을 쓰는 내내 아낌없이 자신을 내어 주었다. 따뜻한 식사와 함께 있음, 사랑, 공동 육아에서의 유연함, 한결같은 지지, 그리고 꼭 필요한 순간에 건네준 한 잔의 핫초콜릿까지, 그녀가 베풀어 준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은 어떤 “고맙다”는 말로도 다 담을 수 없다.

나의 딸 미카엘라는 여러 면에서 가장 가까운 협력자가 되어 주었다. 그녀가 매일 세상을 열려 있고 사랑으로 가득한 마음으로 맞이하는 방식은 나에게 참으로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만족할 줄 모르는 호기심, 배움 속에서 줄지 않는 순수한 기쁨, 다른 존재들을 향한 끝없는 돌봄, 그리고 삶에 대한 다정한 주의기울임, 세상의 가장 섬세한 결까지 포착해 그것을 시와 그림, 조각, 이야기, 춤, 노래로 다시 빚어내는 그 감각. 이 모든 것은 우리가 기억할 만한 미래를 가능하게 하는 핵심 요소들이다. 이 책을 그녀에게 바친다.

공간 예약할 때, 이미 등록된 일시는 알림으로 표시

연구자의 집 홈페이지 대관을 수정.  기존에는 관리자가 공간 예약을 직접 확인하고 있었는데, 예약이 많아 질 수도 있어서 수정.  전에는 겹치는 때가 거의 없었음.

 

jQuery를 기본으로 datetimepicker를 사용하고 있음.

먼저, 예약된 시간 데이터를 AJAX를 통해 미리 불러오고, 대관 시작일 (rent_day_date-place-start)과 대관 끝나는 시간 (rent_day_date-place-end)을 데이터베이스에서 가져와 배열 형태로 전달.

var reservedSlots = [];

 

function.php코드는

/**
 * 대관 시작일시 중복되지 않게 신청 자체가 안 되게 합시다
 */
add_action('wp_ajax_get_reserved_dates', 'get_reserved_dates');
add_action('wp_ajax_nopriv_get_reserved_dates', 'get_reserved_dates');

function get_reserved_dates() {
    global $wpdb;

    // 오늘 날짜의 00시부터 포함되도록 설정
    $today = date('Y-m-d 00:00:00');

    $results = $wpdb->get_results($wpdb->prepare("
        SELECT pm.meta_value AS start_time, 
               (SELECT meta_value FROM {$wpdb->postmeta} WHERE post_id = pm.post_id AND meta_key = 'rent_day_date-place-end') AS end_time
        FROM {$wpdb->postmeta} pm
        INNER JOIN {$wpdb->posts} p ON p.ID = pm.post_id
        WHERE pm.meta_key = 'rent_day_date-place-start'
        AND pm.meta_value >= %s
        AND p.post_status = 'publish'
    ", $today));

    $reserved_dates = [];
    foreach ($results as $row) {
        $startDateTime = new DateTime($row->start_time);
        $endTime = $row->end_time;

        // date-place-end의 시간을 start의 날짜에 붙여줌
        $endDateTime = new DateTime($startDateTime->format('Y-m-d') . ' ' . $endTime);

        $reserved_dates[] = [
            'start' => $startDateTime->format('Y-m-d H:i:s'),
            'end' => $endDateTime->format('Y-m-d H:i:s')
        ];
    }

    wp_send_json_success($reserved_dates);
    wp_die();
}

 

 

style은 나중에 반영하고.


/* 시간 선택 필요 표시 */
    .xdsoft_time_variant.time-selection-needed {
        border: 2px solid #ff5722;
        border-radius: 4px;
    }
    
    /* 사용자 안내 메시지 스타일 */
    .time-selection-message {
        color: #ff5722;
        background-color: #fff8f6;
        padding: 5px 10px;
        border-radius: 4px;
        font-size: 12px;
        text-align: center;
        margin-top: 5px;
        display: none;
    }
    
    /* 날짜 선택 완료 시 표시 */
    .xdsoft_datetimepicker.date-selected .xdsoft_calendar {
        border-bottom: 2px solid #4CAF50;
    }
    
    /* 중복된 필드 강조 표시 */
    input.overlap-error {
        border: 2px solid #ff5722 !important;
        background-color: #fff8f6 !important;
    }
    
    /* 중복 안내 메시지 */
    .overlap-message {
        color: #ff5722;
        font-size: 12px;
        margin-top: 5px;
        display: none;
    }

이제 페이지 로드 시 AJAX를 통해 예약된 시간을 가져와 DateTimePicker에 반영.

콘솔에서 Network → XHR → admin-ajax.php → Response에서 JSON 데이터가 제대로 오는지 확인

// 메시지 요소 추가
jQuery('#date-place-start').after('<div class="time-selection-message">시간을 선택해주세요 ↓</div>');
jQuery('#date-place-start').after('<div class="overlap-message start-overlap">선택한 시작 시간이 이미 예약된 시간과 겹칩니다</div>');
jQuery('#date-place-end').after('<div class="overlap-message end-overlap">선택한 종료 시간이 이미 예약된 시간과 겹칩니다</div>');

jQuery.datetimepicker.setLocale('ko');

// 날짜 제한 설정 (오늘부터 3일 이후 ~ 90일 후)
var myDateStart = new Date(new Date().getTime() + (3 * 24 * 60 * 60 * 1000));
var myDateEnd = new Date(new Date().getTime() + (90 * 24 * 60 * 60 * 1000));

// 예약된 시간 목록
var reservedSlots = [];

// AJAX 응답 처리 (초 단위 + 날짜 포맷 조정)
jQuery.ajax({
    url: "<?php echo admin_url('admin-ajax.php'); ?>",
    type: "POST",
    data: { action: 'get_reserved_dates' },
    success: function(response) {
        if (response.success) {
            reservedSlots = response.data.map(function(slot) {
                // 시작 시간은 날짜 포함, 종료 시간은 시간만 추출
                var startDate = new Date(slot.start);
                var endDate = new Date(slot.end);
                
                var formattedStart = 
                    startDate.getFullYear() + '-' +
                    String(startDate.getMonth() + 1).padStart(2, '0') + '-' +
                    String(startDate.getDate()).padStart(2, '0') + ' ' +
                    String(startDate.getHours()).padStart(2, '0') + ':' +
                    String(startDate.getMinutes()).padStart(2, '0');
                
                var formattedEnd = 
                    String(endDate.getHours()).padStart(2, '0') + ':' +
                    String(endDate.getMinutes()).padStart(2, '0');
                
                return {
                    start: startDate,
                    end: endDate,
                    formattedStart: formattedStart, // "2025-06-06 18:00"
                    formattedEnd: formattedEnd      // "21:00"
                };
            });
        }
    }
});

// 중복 시간 체크 함수 (초 제거)
function checkReservationOverlap(selectedStart, selectedEnd) {
    return reservedSlots.find(function(slot) {
        // 날짜 비교 로직은 동일
        return (
            (selectedStart >= slot.start && selectedStart < slot.end) ||
            (selectedEnd > slot.start && selectedEnd <= slot.end) ||
            (selectedStart <= slot.start && selectedEnd >= slot.end)
        );
    });
}

// 상세 중복 체크 (어떤 부분이 중복되는지 확인)
function checkDetailedOverlap(selectedStart, selectedEnd) {
    // 같은 날짜인지 먼저 확인 (월과 일이 맞아야 함)
    function isSameDate(date1, date2) {
        return date1.getFullYear() === date2.getFullYear() && 
               date1.getMonth() === date2.getMonth() && 
               date1.getDate() === date2.getDate();
    }
    
    // 각 예약된 슬롯에 대해 확인
    for (var i = 0; i < reservedSlots.length; i++) {
        var slot = reservedSlots[i];
        
        // 같은 날짜가 아니면 건너뜀
        if (!isSameDate(selectedStart, slot.start)) {
            continue;
        }
        
        // 중복 유형 판별
        var startOverlap = (selectedStart >= slot.start && selectedStart < slot.end);
        var endOverlap = (selectedEnd > slot.start && selectedEnd <= slot.end);
        var containsOverlap = (selectedStart <= slot.start && selectedEnd >= slot.end);
        
        // 중복이 발견되면
        if (startOverlap || endOverlap || containsOverlap) {
            var overlapType;
            
            if (startOverlap && endOverlap) {
                // 시작과 종료 시간 모두 중복
                overlapType = 'both';
            } else if (startOverlap) {
                // 시작 시간만 중복
                overlapType = 'start';
            } else if (endOverlap) {
                // 종료 시간만 중복
                overlapType = 'end';
            } else if (containsOverlap) {
                // 선택 범위가 기존 예약을 완전히 포함
                overlapType = 'both';
            }
            
            // 알림 표시 및 적절한 필드로 포커스 이동
            showOverlapAlert(slot, overlapType);
            return true;
        }
    }
    
    // 중복 없음
    return false;
}

// 중복 체크 시 알림 메시지 생성 및 커서 이동
function showOverlapAlert(overlap, overlapType) {
    // 모든 중복 표시 초기화
    jQuery('#date-place-start, #date-place-end').removeClass('overlap-error');
    jQuery('.overlap-message').hide();
    
    // 포맷: "시작날짜 시작시간 ~ 종료시간"
    alert(`⚠️ 이미 예약된 시간대:\n${overlap.formattedStart} ~ ${overlap.formattedEnd}`);
    
    // 중복 타입에 따라 적절한 필드로 포커스 이동 및 시각적 표시
    if (overlapType === 'start') {
        // 시작 시간이 중복되면 시작 필드로 포커스 및 강조
        jQuery('#date-place-start').addClass('overlap-error');
        jQuery('.start-overlap').show();
        setTimeout(function() {
            jQuery('#date-place-start').datetimepicker('show');
        }, 100);
    } else if (overlapType === 'end') {
        // 종료 시간이 중복되면 종료 필드로 포커스 및 강조
        jQuery('#date-place-end').addClass('overlap-error');
        jQuery('.end-overlap').show();
        setTimeout(function() {
            jQuery('#date-place-end').datetimepicker('show');
        }, 100);
    } else if (overlapType === 'both') {
        // 둘 다 중복이면 시작 필드로 포커스 및 둘 다 강조
        jQuery('#date-place-start, #date-place-end').addClass('overlap-error');
        jQuery('.start-overlap, .end-overlap').show();
        setTimeout(function() {
            jQuery('#date-place-start').datetimepicker('show');
        }, 100);
    }
}

// 날짜만 선택된 상태 추적 변수
var dateOnlySelected = false;

// 첫 번째 필드 설정 (날짜 + 시간)
jQuery('#date-place-start').datetimepicker({
    minDate: myDateStart,
    maxDate: myDateEnd,
    step: 60,
    format: 'Y-m-d H:i',
    allowTimes: ['11:00', '12:00', '13:00', '14:00', '15:00', '16:00', '17:00', '18:00', '19:00', '20:00', '21:00'],
    timepicker: true,
    // 날짜와 시간을 분리해서 선택하도록 설정
    onGenerate: function(ct, $input) {
        // datetimepicker가 생성될 때마다 이벤트 설정
        if (dateOnlySelected) {
            // 시간 선택 영역 강조
            jQuery('.xdsoft_time_variant').addClass('time-selection-needed');
            jQuery('.time-selection-message').show();
            jQuery('.xdsoft_datetimepicker').addClass('date-selected');
        }
    },
    onSelectDate: function(ct, $input) {
        // 날짜만 선택된 상태에서는 시간 선택 화면으로 자동 전환
        var dateStr = ct.getFullYear() + '-' + 
                      String(ct.getMonth() + 1).padStart(2, '0') + '-' + 
                      String(ct.getDate()).padStart(2, '0');
                      
        // 두 번째 필드에 사용할 날짜 저장
        jQuery('#date-place-end').data('selected-date', dateStr);
        
        // 날짜만 선택 상태 설정
        dateOnlySelected = true;
        
        // 시간 선택 영역 강조
        setTimeout(function() {
            jQuery('.xdsoft_time_variant').addClass('time-selection-needed');
            jQuery('.time-selection-message').show();
            jQuery('.xdsoft_datetimepicker').addClass('date-selected');
        }, 50);
        
        // 날짜만 선택 - 시간은 선택하게 함
        // 현재 input에 날짜만 설정 (시간 선택으로 넘어감)
        $input.val(dateStr + ' ');
    },
    onSelectTime: function(ct, $input) {
        if (!ct) return;
        
        // 시간 선택 표시 제거
        dateOnlySelected = false;
        jQuery('.xdsoft_time_variant').removeClass('time-selection-needed');
        jQuery('.time-selection-message').hide();
        jQuery('.xdsoft_datetimepicker').removeClass('date-selected');
        
        var dateStr = ct.getFullYear() + '-' + 
                      String(ct.getMonth() + 1).padStart(2, '0') + '-' + 
                      String(ct.getDate()).padStart(2, '0');
        
        // 현재 종료 시간 값 확인
        var currentEndTime = jQuery('#date-place-end').val();
        var startTime = ct.getHours() + ':' + String(ct.getMinutes()).padStart(2, '0');
        
        // 두번째 필드 값이 없는 경우에만 자동 설정
        if (!currentEndTime) {
            // 종료 시간 자동 설정 (시작시간 + 1시간)
            var startHour = ct.getHours();
            var endHour = startHour + 1;
            
            // 종료 시간이 22시를 넘으면 22시로 설정
            if (endHour > 22) {
                endHour = 22;
            }
            
            var endTime = String(endHour).padStart(2, '0') + ':00';
            jQuery('#date-place-end').val(endTime);
        } else {
            // 두번째 필드에 값이 있는 경우, 시간 간격 유지 (옵션)
            var endTimeParts = currentEndTime.split(':');
            var startHour = ct.getHours();
            var endHour = parseInt(endTimeParts[0]);
            
            // 종료 시간과 시작 시간의 차이가 최소 1시간 이상인지 확인
            if (endHour <= startHour) {
                endHour = startHour + 1;
                if (endHour > 22) endHour = 22;
                jQuery('#date-place-end').val(String(endHour).padStart(2, '0') + ':00');
            }
        }
        
        setTimeout(function() {
            validateTimeRange();
        }, 100);
    },
    onChangeDateTime: function(currentDateTime) {
        if (!currentDateTime) return;
        
        var dateStr = currentDateTime.getFullYear() + '-' + 
                      String(currentDateTime.getMonth() + 1).padStart(2, '0') + '-' + 
                      String(currentDateTime.getDate()).padStart(2, '0');
        jQuery('#date-place-end').data('selected-date', dateStr);
    },
    onClose: function(selectedDate, $input) {
        // 닫을 때 시간이 선택되지 않았으면 다시 열기
        var inputVal = $input.val();
        if (dateOnlySelected && (!inputVal.includes(':') || inputVal.endsWith(' '))) {
            setTimeout(function() {
                $input.datetimepicker('show');
                // 시간 선택 영역 강조
                jQuery('.xdsoft_time_variant').addClass('time-selection-needed');
                jQuery('.time-selection-message').show();
                jQuery('.xdsoft_datetimepicker').addClass('date-selected');
            }, 100);
        } else {
            // 시간 선택 완료 시 강조 스타일 제거
            dateOnlySelected = false;
            jQuery('.xdsoft_time_variant').removeClass('time-selection-needed');
            jQuery('.time-selection-message').hide();
            jQuery('.xdsoft_datetimepicker').removeClass('date-selected');
        }
    }
});

// 두 번째 필드 설정 (시간만)
jQuery('#date-place-end').datetimepicker({
    datepicker: false,
    format: 'H:i',
    allowTimes: ['12:00', '13:00', '14:00', '15:00', '16:00', '17:00', '18:00', '19:00', '20:00', '21:00', '22:00'],
    step: 60,
    onSelectTime: function(ct, $input) {
        setTimeout(function() {
            validateTimeRange();
        }, 100);
    }
});

// 공통 검증 함수 (두 필드 값 조합 후 중복 체크)
function validateTimeRange() {
    var startInput = jQuery('#date-place-start').val();
    var endInput = jQuery('#date-place-end').val();
    var dateStr = jQuery('#date-place-end').data('selected-date');
    
    // 데이터가 완전하지 않으면 검증 건너뛰기
    if (!startInput || !endInput || !dateStr || startInput.indexOf(':') === -1) return;

    var startDate = new Date(startInput);
    var endDate = new Date(dateStr + ' ' + endInput);

    // 종료 시간이 시작 시간보다 이후인지 확인
    if (endDate <= startDate) {
        alert('종료 시간은 시작 시간보다 이후여야 합니다.');
        // 기본값으로 종료 시간 설정 (시작 시간 + 1시간)
        var startHour = startDate.getHours();
        var endHour = startHour + 1;
        if (endHour > 22) endHour = 22;
        var newEndTime = String(endHour).padStart(2, '0') + ':00';
        jQuery('#date-place-end').val(newEndTime);
        // 종료 시간 필드로 포커스 이동
        setTimeout(function() {
            jQuery('#date-place-end').datetimepicker('show');
        }, 100);
        return;
    }
    
    // 상세 중복 체크 (어떤 부분이 중복되는지 확인)
    checkDetailedOverlap(startDate, endDate);
}

함께 ‘트러블과 함께하기’를 위한 운반 가방 / 도나 해러웨이

도나 해러웨이의 <Receiving Three Mochilas in Colombia Carrier Bags for Staying with the Trouble Together>, 2019 를 옮긴 겁니다.  어슐러 k. 르 귄의 「픽션의 운반 가방 이론」을 인용하는 부분들은 이전 번역을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이곳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콜롬비아에서 세 개의 모칠라를 받기
함께 ‘트러블과 함께하기’를 위한 운반 가방
Receiving Three Mochilas in Colombia
Carrier Bags for Staying with the Trouble Together
Donna Haraway 도나 해러웨이 (부깽 옮김)

어슐러 K. 르 귄을 기리며

1980년대 후반 어슐러 K. 르 귄의 「픽션의 운반 가방 이론」을 처음 읽었을 때, 그 글은 내 존재의 중심을 뒤흔들었다.((르 귄의 「픽션의 운반 가방 이론」은 진화론 속 서사에 대한 내 사유와, 『영장류의 시각: 현대 과학 세계의 젠더, 인종, 자연(Primate Visions: Gender, Race and Nature in the World of Modern Science)』(뉴욕: 라우틀리지, 1989)에서 영장류 행동 연구의 역사 속 ‘여성 채집자’라는 형상을 사유하는 방식을 형성했다. 르 귄은 인간 진화의 운반 가방 이론을 엘리자베스 피셔에게서 배웠다. 그 시기는 1970~1980년대, 페미니즘 이론 속에서 크고 대담하며 사변적이고 세계적인 이야기들이 타오르던 때였다(엘리자베스 피셔, 『여성의 창조(Women’s Creation)』, 뉴욕: 맥그로힐, 1975). 사변적 우화(speculative fabulation)처럼, 사변적 페미니즘(speculative feminism) 또한 SF적 실천이었다. 이 글에 인용된 르 귄의 문장들은 모두 Ursula K. Le Guin, The Carrier Bag Theory of Fiction, 런던: Ignota, 2019에서 가져왔다.)) 그리고 지금도, 거대한 위험의 시대를 함께 살아가기 위해 삶의 이야기들을 매듭 짓는 과정 속에서 여전히 나를 풀어헤치고 다시 엮어낸다. 2019년 8월, 나는 보고타, 부카라망가, 산타마르타에서의 강도 높은 2주간의 현장 작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인류학, 과학기술학, 예술, 환경인문학 분야의 동료이자 친구들은 따뜻하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나를 그들의 작업에 참여시켰다. 그들의 작업은 다음을 위한, 그리고 다음과 함께하는 것이었다. 땅과 물의 보호와 회복, 토착민 공동체의 번영, 도시 거리 사람들을 위한 비폭력적 공간 만들기, 작물 파괴와 마약 전쟁, 개발 사업으로 삶이 무너진 농민들에 대한 보상, 아프로-콜롬비아인들의 삶과 문화를 지지하는 일, 깊고 넓은 자연적·사회적 정의와 돌봄의 실천. 이토록 겹겹이 쌓인 복잡성과 되살아나는 고통의 땅에서 내 친구들은 평범한 사람들이 내밀한 평화와 공적인 평화를 꿰매고, 매듭짓고, 짜고, 수놓으며 일하고 놀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것이 다시금 풀려나가더라도 말이다. 콜롬비아의 내 친구들은 뼛속 깊이 알고 있다. 르 귄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일의 중요성을. ‘다른 이야기, 말해지지 않은 이야기, 삶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말하는 일을.

우리가 다른 이야기들을 이야기하기 위해 어떤 이야기들을 이야기하는가가 중요하다. 우리가 다른 개념들을 사유하기 위해 어떤 개념들을 사유하는가가 중요하다. 우로보로스가 다시금 어디서 그리고 어떻게 자신의 꼬리를 삼키는가가 중요하다. 그것이 바로 용의 시간(dragon time) 속에서 세계 짓기(worlding)가 스스로 이어가는 방식이다. 용의 용감한 제자였던 르 귄의 이야기들은 살아 있는 것들의 재료를 모으고, 나르고, 이야기하기 위한 넉넉한 가방이다. “잎사귀, 박 껍질, 그물, 주머니, 띠 천, 자루, 병, 냄비, 상자, 용기. 담는 것. 받는 것.”

그런 상호적인 이야기들을 건네며, 나의 동료들은 나에게 세 개의 아주 다른 담는 가방, 세 개의 모칠라(mochila)를 주었다. 그것들은 ‘다르게 살아가고 죽어가기’의 지속적인 과정을 위해 서로 함께-되기(becoming-with)를 길러내는 데 필요한 특별하고 강력한 것들을 모으기 위한 가방들이다. 이 가방들이 모으는 이야기들은 죽이는 이야기들(the killing stories)(([옮긴이] 죽이는 이야기(the killer story)는 ‘멋진 이야기’(죽인다!)와 ‘살인자의 이야기’라는 두 의미를 함께 지닌다.)), 생명을 빨아먹는 무기화된 과학과 기술, 마약과 돈에 흠뻑 젖은 흡혈 시장들, 그리고 역사를 자기 형상대로 빚어내려 애쓰는 모든 찌르는 이야기(prick tales)(([옮긴이] “prick tales”은 어슐러 K. 르 귄의 「픽션의 운반 가방 이론」에서 “막대기와 창, 칼, 즉 치고 찌르고 후려치는 긴 것들”로 은유된 남성적 영웅 서사를 비틀며 등장한 표현이다. prick은 속어로 남성 성기이자 오만하고 하찮은 남성을 가리킨다. 해러웨이는 이를 과학·기술·자본이 결탁한 정복과 폭력의 서사, 곧 ‘남근적 이야기들’의 상징으로 사용한다. “Prick,”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Prick_(slang) ))들을 잠재울 수 있다. 이 가방들 중 어느 것도 살육의 들판(killing fields) 바깥에 존재하는 유토피아가 아니다. 정반대다. 그 각각은 모칠라를 만드는 이들과 그것을 지니는 이들을 지금, 이 위태로운 세계들 속에 위치시킨다. 모칠라는 그것을 만들고 사용하는 사람들을 강하게 한다. 이 운반 가방들은 그들의 사람들을 더 세계 속의 존재로, 그리고 지금 진정 무엇이 일어나고 있으며 그것이 어떻게 여전히 다르게 될 수 있는지를 분별하고 말할 수 있는 존재로 만든다. 각각의 모칠라는 두터운 현재와 풍요로운 미래를 누릴 자격이 있는 삶과 죽음의 방식들을 위해 역사를 다시 만들 수 있는 이야기들을 어떻게 말할 것인가라는 절실한 질문으로부터 자라나며, 또한 그에 대한 응답을 요구한다. 르 귄의 통찰에 따르면 이야기의 적절한 형태란 의미를 담고 관계를 가능하게 하는 것들을 품는 속이 빈 자루와 같다. 각각의 모칠라는 씨앗과 별의 세계에 거주하기 위해 필요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이야기(gripping tales)와 기묘한 리얼리즘(strange realism), 진지한 소설(serious fiction), 과학소설(science fiction), SF(([옮긴이] SF는 도나 해러웨이가 확장한 개념으로, 과학소설(Science Fiction)을 넘어 사변적 우화(Speculative Fabulation), 실뜨기(String Figures), 사변적 페미니즘(Speculative Feminism), 과학적 사실(Science Fact) 등을 포괄한다. 해러웨이에 따르면 SF는 “서로 얽히고 엮이는 존재들과 무늬들을 꾸며내며, 서로 함께-되기(becoming-with)의 실천을 지속하는 방식”이다. 즉, 세계 짓기(worlding)의 과정으로서, 따라가고 엮어내는 사유이자 실천이며 이야기하기의 형식이다. (도나 해러웨이, 『트러블과 함께하기: 크툴루세인에서 친족 맺기』(더럼: 듀크 대학교 출판부, 2016), 2-3쪽) ))를 담는 가방이다. 이 세계들은 다양한 종류의 인간과 인간-이상의(more-than-human) 사람들, 그리고 서로를 죽이고 행성을 메마르게 빨아먹는 대신 그보다 더 나은 일들을 하는 종들로 가득 차 있다.

이제 나는 각각의 모칠라, 각각의 운반 가방이 나에게 몸으로 느끼게 해준 이야기들을 풀어놓으려 한다. 이 가방들 중 어느 것이든 들거나 몸에 두르는 것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말해지지 않은 이야기들 속에서 응답하고 서로 함께-되는(become-with) 능력들의 매듭짓기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다.

그림 1.
1. ‘플로르-세르(Flore-Ser)’는 말 그대로 ‘꽃이 되다(flower-be)’를 뜻하며, ‘florecer’, 즉 ‘번성하다’라는 스페인어 단어처럼 들린다. 이 말은 물과 생명을 수호하는 여성 협회(AMARÚ)의 여성들이 만든 파란 리넨 가방에 수놓아져 있다.

2. 천연색 양모의 넓은 줄무늬 가방은 시에라 네바다 데 산타마르타의 아루아코(Arhuaco)족 연장자 여성이 정교하게 매듭지어 만든 것이다. 그녀의 손녀 아티(Ati)는 산타마르타의 막달레나 대학교에서 원주민 학생 협회 회장을 맡고 있으며, 이 가방을 민족지학자 윌리엄 마르티네스 두에냐스(William Martinez Dueñas)와 아스트리드 로레나 페라판 레데스마(Astrid Lorena Perafan Ledezma)에게 팔았다. 두 사람은 나의 콜롬비아 방문을 도왔고, 그 가방을 내게 선물했다.

3. 녹슨 붉은빛의 기하학적 무늬가 있는 모칠라는 콜롬비아 북동부 라과히라(La Guajira)의 와유(Wayúu) 여성들이 면사를 코바늘로 떠서 만든 것이다.

내 첫 가방을 ‘플로르-세르’라 부를 것이다. 그녀는(([옮긴이] 플로르-세르(Flore-Ser)는 ‘태어났다(born)’는 표현과 인칭 대명사 she로 지칭됨으로써, 해러웨이가 말하는 기이한 친족(oddkin)의 잉태 과정을 수행적으로 드러낸다.)) 이미 앞면에 모호하게 가정법이자 명령법인 동사 형태로 수놓인, ‘번성’을 뜻하는 이 유망한 이름을 지니고 있다. 친구이자 동료인 타니아 페레스-부스토스(Tania Pérez-Bustos)는 2019년 8월 보고타 공항에서 나를 마중 나온 직후 이 가방을 내게 주었다. 플로르-세르는 환경 정의와 성적·재생산 권리를 위해 활동하는 한 연대체의 직물 행동주의(textile activism) 속에서 태어났다. 처음에 내가 본 것은 청록색 자궁 안에 섬세한 흰 꽃뿐이었다. 2주 동안 나는 민족지학자이자 과학기술학자인 타니아가 기이한 친족(oddkin)(([옮긴이] ‘기이한 친족(oddkin)’은 해러웨이가 『트러블과 함께하기』에서 제시한 개념으로, 혈연이나 종(種)을 넘어 인간과 비인간, 사람과 사물, 이야기와 관계가 서로에게 응답하며 얽히는 과정을 통해 형성되는 존재를 가리킨다. 이 글에서 ‘기이한 친족’은 첫 번째 모칠라 플로르-세르를 중심으로 구체화된다. 플로르-세르는 인간과 비인간이 함께 짜는 직물적 관계망 속에서 태어난 존재이며, 그 안에 해러웨이 자신과 동료들이 ‘담김’으로써 새로운 관계적 친족의 일부가 된다. 플로르-세르는 이러한 관계 맺음을 가능하게 하는 매개이자, 그 관계 속에서 태어나고 응답하는 하나의 기이한 친족(oddkin) 그 자체이기도 하다. ))의 잉태에 관해 가르쳐 준 것을 보고 느끼는 법을 배웠다. 나는 이 가방에 내 콜롬비아 방문의 조각들을 하나씩 담아냈다. 다종(multispecies)의 환경적·사회적 정의와 돌봄을 위한 그들의 일과 놀이 속에서, 콜롬비아 사람들과 함께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할 수 있도록 말이다. 타니아는 섬유 예술과 그 실천자들을 공예 디자인과 공학 디자인 안에서 함께 엮어낸다. 그녀는 특히 콜롬비아 카르타고의 칼라도(calado) 자수에서, 삶과 직물의 ‘풀어헤침과 수선이라는 얽힌 실천들(entangled practices of unraveling and mending)’을 연구한다.((타니아 페레스-부스토스, 「돌봄으로 사유하기: 공예 자수와 기술의 민족지학에서 풀어헤침과 수선」, 『지식의 인류학 저널(Revue d’Anthropologie des Connaissances)』 11:1, 2017. )) 타니아는 함께 일하는 여성들이, 이 힘든 시기에 천천히 손바늘을 움직이며 꿰매는 일이 개인적이고 내밀한 치유와 파괴된 공동체의 재결속, 그리고 땅과 물, 강제 이주, 여전히 가능한 미래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고 전한다. ‘플로르-세르’는 ‘엘 모비미엔토 리오스 비보스 안티오키아(El Movimiento Ríos Vivos Antioquia)’의 여성들이 만든 것이다. 이 가방은 그들의 땅과 물인 카우카강 유역에 건설되고 있는 거대한 수력발전 프로젝트 ‘이드로이투앙고(Hidroituango)’에 맞선 생계 수단이자 저항 수단이다. 이 여성들은 라틴아메리카에서 마지막으로 잘 보존된 건조 열대림 자연문화(naturalcultural) 생태계 중 하나에 속한 다양한 인간들과 수많은 다른 생명 종들로부터 나왔으며, 그들과 연대한다. 이 프로젝트에 맞서 영토와 물을 지키려는 사람들에 대한 폭력이 점점 거세지는 가운데, 이 여성들은 자신들이 신체-영토(cuerpo-territoria)라 부르는 것을 지키며, 모든 형태의 남성적 지배에 맞서 싸운다. 자수를 통한 이야기하기는 사치가 아니다. 그것은 르 귄이 말한 ‘별들의 가방(the bag of stars)’ 속에 삶의 이야기를 위한 공간을 만드는 일이다. 그들은 그들의 가방 속에 나와 내 동료들을 담았다. 내가 그 가방을 멘다면, 응답하지 않는 것은 선택이 아니다. 나는 이 가방을 캘리포니아 산타크루즈의 집으로 가져왔다. 이곳에서 우리는 함께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수놓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많다.

천연색 양모의 넓은 줄무늬를 가진 내 두 번째 가방은 시에라 네바다 데 산타마르타의 아루아코(Arhuaco)족 연장자 여성이 정교하게 매듭지어 만든 것이다. 각각의 무늬는 한 세대의 여성이 다음 세대에게 전해주는 중요한 이야기를 나타낸다. 그녀의 손녀 아티는 산타마르타의 막달레나 대학교(La Universidad de Magdalena) 원주민 학생 협회 회장으로, 이 가방을 민족지학자 윌리엄 마르티네스 두에냐스(William Martinez Dueñas)와 아스트리드 로레나 페라판 레데스마(Astrid Lorena Perafán Ledezma)에게 팔았고, 그들은 나의 콜롬비아 방문을 도왔으며 이 모칠라를 나에게 선물했다. 아티는 그 대학에서 나와 다른 동료들과 함께한 공개 대화에도 참여했다. 오늘날 이러한 가방들은 젊은 아루아코 사람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들은 외부 세력의 지속적인 정착과 개발 계획, 강제된 불법 작물 재배와 정부의 제초제 살포, 암살과 협박, 기후 변화, 생태 관광, 댐 건설, 광산 채굴에 맞서 싸우고 있다. 코기, 위와, 칸쿠아모 등 다른 원주민들과 연대하며, 자신들의 정체성을 주장하고 땅과 이야기를 지키기 위해 힘쓰고 있다. 이 가방이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 거주하는 길은 결코 쉽지 않지만, 그것은 나를 삶과 땅을 위한 대담하고 지속적인 매듭짓기에 연결시킨다. 그 가방을 멘다는 것은 삶의 이야기를 듣고 응답하는 법을 배우는 일을 의미한다.

세 번째 가방도 비슷한 서사들을 담고 있지만, 모든 이야기들이 그렇듯이 그것들은 죽이는 추상(killing abstraction) 속의 어디에도 없는 아무데도 아닌 곳이 아니라, 언제나 특정한 장소에 자리한 이야기들이다. 녹슨 붉은빛의 기하학적 무늬가 있는 모칠라는 콜롬비아 북동부 라과히라(La Guajira)의 한 와유 여성이 면사를 코바늘로 떠서 만든 것이다. 나는 그녀의 이름을 모른다. 이 가방은 콜롬비아 인류학자 레오나르도 몬테네그로(Leonardo Montenegro)에게서 받았다. 그는 앵글로-아메리칸(Anglo-American), 글렌코어(Glencore), BHP 빌리턴(BHP Billiton) 등 다국적 기업들에 맞서 땅, 물, 생존을 지키려는 와유 공동체들을 지원하고 있다. 상황은 참혹하다. 아이들과 동물들이 물과 식량의 부족으로 죽어가고, 끝없는 가뭄 속에서 농작물은 타들어간다. 이 빈곤과 갈증은 자연적인 사실이 아니다. 그것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노천탄광인 세레혼(Cerrejón) 탄광의 결과이며, 이 지구를 태우는 연료의 가공과 운송을 위해 물을 끝없이 탐하는 욕망의 산물이다. 예컨대 란체리아(Ranchería)강의 댐으로 인해 세레혼은 하루 1,700만 리터의 물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지만, 라과히라의 주민 각자는 하루 평균 0.7 리터의 물만으로 살아가야 한다.((가이아 재단(The Gaia Foundation), 「물, 영토, 그리고 생명을 지키기 위해 죽음의 위협을 받는 콜롬비아 원주민들」, gaiafoundation.org (2019년 9월 15일 접속). )) 광산에 반대하는 사람들에 대한 준군사조직의 살해 위협은 흔하며, 와유족을 그들 조상의 땅에서 몰아내려는 시도의 일환이다. 그러나 아프리카계 후손들과 원주민 공동체들은 여전히 그들의 삶과 땅을 위해 함께하며, 세계에서 강력한 연대들을 만들어가고 있다. 나도 이제 그들의 이야기를 조금 알게 되었다. 나는 이 운반 가방 속에 담겼다. 불타는 질문은 이것이다. 필요한 이야기들을 어떻게 함께 말하고, 필요한 세계들을 어떻게 함께 만들어가며, 치명적인 세계들을 어떻게 잠재울 것인가. 불에 그을린 듯한 적갈색(burnt umber)의 색조와 무늬를 지닌 이 부드러운 직물의 풍성한 감촉은, 말해지지 않은 이야기들을 강하게 만드는 데 필요한 생명을 유지하는 신체적이고 감각적인 자양분을 제공한다.

나는 필리핀의 현대 수렵-채집민 집단 아그타를 대상으로 한 도발적인 공동 연구로 글을 맺으려 한다. 이 연구는 르 귄이 「픽션의 운반 가방 이론」에서 보여준, 거대한 진화 이야기를 기꺼이 다루려던 그 태도로 우리를 다시 데려간다.((대니얼 스미스(Daniel Smith), 필립 슐래퍼(Philip Schlaepfer), 케이티 메이저(Katie Major), 마크 다이블(Mark Dyble), 애비게일 E. 페이지(Abigail E. Page), 제임스 톰슨(James Thompson), 니킬 차우다리(Nikhil Chaudhary), 굴 데니즈 살랄리(Gul Deniz Salali), 루스 메이스(Ruth Mace), 레오노라 아스테테(Leonora Astete), 마릴린 응갈레스(Marilyn Ngales), 루시아 빈시우스(Lucia Vincius), 안드레아 람베르그 미글리아노(Andrea Ramberg Migliano), 「협력과 수렵-채집민 이야기하기의 진화(Cooperation and the Evolution of Hunter-Gatherer Storytelling)」,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Nature Communications)』 8:1853, 2018. )) 연구자들은 오랜 기간 많은 이야기와 이야기꾼들을 찾아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고, 이 공동체 사람들이 무엇을 가장 가치 있게 여기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전형적인 사회과학적 방법들을 설계했다. 그 결과 아그타 응답자들은 사회에서 다른 유형의 사람들이 아무리 유용하고 기능적일지라도, 이야기꾼을 그 어떤 이들보다 더 높이 평가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연구자들은 이 발견을 생물학적 적합도의 관점에서 설명하기를 고집했다. 뛰어난 이야기꾼일수록 더 매력적인 짝이 되고, 사람들은 숙련된 이야기꾼에게 유용한 것을 주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협력처럼 보이는 모든 것을 경쟁적 생물학적 번식 이점의 이야기로 설명하는 이런 서사의 끝없는 지배에는 크게 공감하지 않지만, 이 연구에는 여전히 사랑할 만한 부분이 많다. 연구자들은 숙련된 이야기꾼의 비율이 높은 캠프일수록 협력 수준이 높아졌다고 보고했다. 사람들은 좋은 이야기꾼이 있는 캠프에서 살기를 선호했다. 게다가 대부분의 이야기들은 협력과 성적·사회적 평등을 강조하고 있었다. 어른과 아이들 모두 이런 이야기들을 듣고 또 듣고 싶어 하며, 그 이야기들은 흥미로운 등장인물들과 풍부한 사건들로 가득 차 있다. 물론 음식은 중요하다. 그러나 사람들은 뛰어난 채집가보다 좋은 이야기꾼을 더 좋아한다고 말하며, 실제 그들의 행동은 이러한 자기 평가를 뒷받침하는 듯하다. 이야기들은 공감 능력을 확장하고, 타인, 심지어 낯선 이들에게까지 더 환대하는 관점을 키워주는 방식으로 가치가 부여되는 것으로 보인다. 연구자들은 이야기하기가 인류 진화에서 협력을 조직하고 촉진하는 데 근본적인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나는 내가 선호하는 그럴듯한 이야기(just-so stories)들의 토끼굴 속으로 금세 빠져들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러나 적어도 아그타 사람들과 그들의 이야기꾼들 사이의 관계를 다룬 이 연구는 도발적이다. 만약 그들이 연구에 관심을 가지고, 그 설계와 확산 과정에 의미 있게 참여하며, 그 모든 과정이 그들의 안녕에 기여한다면, 더 많은 연구가 절실히 필요하다. 나는 이야기를 사랑하는 아그타족(the story-loving Agta)에 대한 이야기를 보편화하거나 실체화하는 것에 단호히 저항한다. 그러나 르 귄과 엘리자베스 피셔, 그리고 잘 빚은 항아리나 정교하게 매듭지어진 가방의 형태를 한 이야기들 속에서 서로 잘 살아가고 잘 죽는 강력한 실천을 노래해 온 세대의 이야기꾼들과 함께, 나는 아그타로부터 용기를 얻는다. 이야기하기에 대한 그들의 사랑은 어려운 시대 속에서도 삶을 다시 엮고 새로운 형태의 친족(kin)을 만들어갈 가능성들을 모은다. 이야기로 빚어진 이들(The Storied Ones)은 여전히 가능한 번영을 위한 무늬를 변형하고 발명하는 강력한 존재들이다. 플로르-세르(꽃이-되다).

르 귄이 그녀의 짧지만 위대한 에세이에서 우리에게 말했듯이, “때로는 그 [영웅적] 이야기가 끝을 향해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야기가 더는 전해지지 않게 될까 두려워서, 이 거친 귀리밭, 이 이방의 옥수수밭 한가운데 있는 우리 몇몇은, 옛 이야기가 끝날 때 사람들이 이어갈 수 있는 다른 이야기를 이제 시작해야 하지 않겠냐고 생각한다. 어쩌면. 문제는 우리 모두가 스스로 그 죽이는 이야기의 일부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이야기와 함께 끝장날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일종의 긴박감을 안고, 다른 이야기, 말해지지 않은 이야기, 삶의 이야기의 본질과 주제와 말을 찾아 나선다.”


참고문헌 (Bibliography)

엘리자베스 피셔(Elizabeth Fisher), 『여성의 창조(Women’s Creation)』, New York: McGraw-Hill, 1975.
도나 해러웨이(Donna Haraway), 『영장류의 시각: 현대 과학 세계의 젠더, 인종, 자연(Primate Visions: Gender, Race and Nature in the World of Modern Science)』, New York: Routledge, 1989.
어슐러 K. 르 귄(Ursula K. Le Guin), 『픽션의 운반 가방 이론(The Carrier Bag Theory of Fiction)』, London: Ignota, 2019.
타니아 페레스-부스토스(Tania Pérez-Bustos), 「돌봄으로 사유하기: 공예 자수와 기술의 민족지학에서의 풀어헤침과 수선(Thinking with Care: Unraveling and Mending in an Ethnography of Craft Embroidery and Technology)」, 『지식의 인류학 저널(Revue d’Anthropologie des Connaissances)』 11:1, 2017.
Daniel Smith, Philip Schlaepfer, Katie Major, Mark Dyble, Abigail E. Page, James Thompson, Nikhil Chaudhary, Gul Deniz Salali, Ruth Mace, Leonora Astete, Marilyn Ngales, Lucia Vincius, and Andrea Ramberg Migliano, 「협력과 수렵-채집민 이야기하기의 진화(Cooperation and the Evolution of Hunter-Gatherer Storytelling)」,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 8:1853, 2018.

더욱 페미니즘적인 비평을 향하여 / 에이드리언 리치

Toward a More Feminist Criticism (1981)

더욱 페미니즘적인 비평을 향하여 (1981)

에이드리언 리치 (부깽 옮김)

 

나는 비평을 필요로 하는 작가로서, 때로 비평을 쓰기도 하는 문학도로서, 작은 레즈비언-페미니스트 저널 『Sinister Wisdom』의 공동 편집자로서, 그리고 몇 주 전 워싱턴 D.C.에 모여 스스로를 ‘출판계의 여성들(Women in Print)’이라고 규정한 페미니스트 혹은 레즈비언 편집자, 인쇄업자, 서점 운영자, 출판인, 기록관리자, 비평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이 과업에 임한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특히 그 공동체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여기에 함께 엮고자 하는 생각의 대부분은, 생존의 문제를 다루려는 과정에서 그 공동체의 다른 레즈비언 및 페미니스트 구성원들과 함께 사유하고 길러온 것이다.
그 회의의 첫 번째 소집 공고문은 이렇게 밝히고 있었다. “여성운동의 생존은, 다른 모든 혁명운동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소통망이 지속될 수 있는가에 직접적으로 달려 있다.” 그 소통망의 한 부분으로서, 더 많고 더 나은 비평의 필요성이 우리의 논의 주제 가운데 하나였다.

현재 스스로를 페미니스트 비평이라 부르는 활동에는 사실상 두 가지 유형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대학, 주로 여성학 프로그램에서 비롯되며, 일차적으로 그 내부 공동체를 대상으로 한다. 이 비평은 기존의 정전(canon)에 무리 없이 편입될 수 있는 과거의 작품이나 상업 출판사에서 출간되는 동시대 작품에 집중한다. 또 다른 유형은 때로 대학 학위를 가진 여성들에 의해 쓰이기도 하지만, 다양성에 대한 인식이 확장되면서 어조·언어·스타일의 차이를 수반하는 더 넓은 페미니스트 공동체에 기반을 둔다. 첫 번째 유형의 비평은 『Signs』, 『Women’s Studies』, 『Feminist Studies』와 같은 저널뿐 아니라, 때로는 『College English』, 『Parnassus』와 같은 비(非)페미니스트 문학·비평 저널이나 전문 계간지에 실린다. 두 번째 유형은 『Conditions』, 『Feminary』, 『The Feminist Review』, 『off our backs』, 『Sinister Wisdom』 등의 잡지뿐 아니라 『First World』, 『Radical Teacher』, 『Freedomways』, 『Southern Exposure』 등에도 발표되는 경향이 있다. 문제는 첫 번째 비평이 두 번째 비평에 귀 기울이지 않을 뿐 아니라, 실제로는 그로부터 거리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 내가 여기서 다루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 분열이다.

서구 문학 문화에 잘 알려진 한 분열을 먼저 지적하고자 한다. 그것은 중산층적이고 전통적인 가치를 대변하는 문학적 ‘기득권(establishment)’과, 확고히 자리 잡은 사상과 형식에 도전하고 규칙을 무시하며 ‘약강격(iamb)을 부수고’, 현재의 기득권 양식에 반대하는 ‘소(little) 잡지’를 펴내는 ‘아방가르드(avant-garde)’ 사이의 분열이다. 문학적 ‘아방가르드’는 종종 정치적으로도 급진적이었지만,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예를 들어 남부의 퓨지티브 운동(Fugitive movement)이 급속히 하나의 기득권으로 변모한 것처럼) ‘모더니스트적’이거나 형식적으로 반항적인 미학 속에서 보수적에서 파시즘에 이르는 정치적 태도를 드러내기도 했다. 페미니스트 비평은 문학 비평의 한 학파로서가 아니라, 1970년에 출간된 케이트 밀렛(Kate Millett)의 기념비적 저서 제목처럼 남성과 여성 모두의 문학을 성 정치학(sexual politics)의 관점에서 바라보려는 정치적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행위로서 시작되었다. 밀렛은 서문에서 이렇게 썼다:

이 에세이는 문학 비평과 문화 비평이 동등하게 결합된, 어쩌면 일종의 혼종이자 완전히 새로운 변종에 가깝다. 나는 문학이 구상되고 생산되는 더 넓은 문화적 맥락을 비평이 고찰할 여지가 있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작업해왔다. 문학사에서 비롯된 비평은 그 범위가 너무 제한적이어서 이러한 고찰을 수행할 수 없으며, 미학적 고려에서 출발한 비평, 즉 ‘신비평’은 애초에 그러려 한 적이 없다.¹

페미니스트 비평은 미인대회에서부터 대학 교재에 이르기까지, 문화 전반을 그것이 여성의 삶을 어떻게 반영하고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의 관점에서 비평적으로 성찰한 여성 해방 운동에서 비롯되었다. 1977년 에세이 「흑인 페미니스트 비평을 향하여(Toward a Black Feminist Criticism)」에서 바바라 스미스(Barbara Smith)는 이렇게 말한다.

책이 실제로 존재하고 기억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이야기되어야 한다. 책이 이해되려면 적어도 작가의 기본적인 의도가 고려되는 방식으로 검토되어야 한다. … 1970년대에 구체적인 페미니스트 비평이 등장하기 전까지, 백인 여성들의 책은 … 억압받는 사람들의 문화적 표상으로 명확히 인식되지 못했다. 가부장적 가치와 관행이 여성의 삶에 미친 영향을 놀라울 만큼 정확히 기록하고 있으며, 더 중요하게는 백인 여성의 문학이 여성 경험에 대한 본질적인 통찰을 제공한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은 북미 페미니스트 운동의 제2물결이 표면화된 이후였다.²

이 진술을 염두에 두고, 나는 페미니스트 문학 비평을 여성 해방 운동, 곧 혁명적인 운동에 의식적으로 참여하는 비평이라고 정의하고자 한다. 단순히 여성 글쓰기의 정치적 맥락에 대한 인식 없이 여성이 다른 여성의 책에 대해 쓰는 것이나, 지성의 자유주의적 슈퍼마켓에서 여성적 ‘대안적 읽기’에 그친다고 여기는 저자에 의한 것이나, 백인성·이성애·학문적 연구의 규범이 본질적으로 완전한 시각을 제공한다고 받아들이는 저자에 의한 것은 페미니스트 문학 비평으로 정의하지 않는다. 나는 책을 읽고 쓰거나, 아무리 취약하게나마 학계에 몸담은 여성들뿐 아니라, 모든 여성들의 삶에 대한 지속적이고 의식적인 책무성을 전제로 한 페미니스트 비평의 정의를 제시하고자 한다. 학계 페미니스트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백인 여성들에게 이는 학계 문화의 규범이자 그 너머 지배 문화의 규범인 ‘보편적 백인성’을 의식적으로 벗어나려는 학습을 포함하며, 동시에 ‘보편적 이성애’라는 규범을 벗어나려는 학습을 포함한다. 이는 우리 작업에 없는 포괄성을 있다고 여기지 않으며, 유색인 여성 및/혹은 레즈비언을 암시하는 장이나 문단, 각주를 의례적으로 덧붙이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백인성과 이성애의 보편성에 도전하는 것은 우리가 10여 년 전 가부장적 가치와 관행에 도전하며 겪었던 것만큼이나 급진적이고 놀라운 과정임을 시사한다. 이것이야말로 페미니스트 비평이 반드시 나아가야 할 다음 단계이며, 그 과정은 이미 시작되었다.

나는 백인 학계 페미니스트들의 문학 비평을 볼 때, 그들이 백인 남성 비평가들의 저작을 대거 인용하는 것에 종종 놀라게 된다. 그리고 그 인용과 함께 자주 드러나는, 이 신사들과 논쟁해야 한다는 듯한 방어적 어조와, 페미니스트를 더 넓은 여성 공동체와 연결하기보다는 오히려 한 여성으로 고립시키는 대화에 여전히 얽매여 있는 태도에도 놀라게 된다. 나는 일종의 근본적인 긴장도 느낀다. 그것은 더 나아가야 할 때 자기 자신을 다시 한번 설명해야 하는 긴장이자, 적대적인 환경 속에서 용감하게 페미니즘의 기치를 높이 들어야 하는 긴장이며, 눈에 띄는 “신랄함” 없이 동료적인 농담을 주고받아야 하는 긴장이고, 문학비평의 언어와 방법을 동원해, 대부분 백인인 여성 작가들을 늘 ‘다뤄야 할 텍스트’로 사용하는 데서 오는 긴장이다. 나는 학계에서 이성애자로 수년간 살아온 백인 중산층 여성으로서, 이 긴장을 내 안에서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것은 양쪽을 다 취하려는, 즉 호감을 주면서도 대담하려는 긴장이며, 토큰(token, 구색 맞추기용 인물)이면서도 토큰처럼 행동하지 않으려는 몸부림이다. (나는 이런 일을 내가 얼마나 많이 해왔는지, 그리고 여전히 그렇게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나는 문학을 비평하는 페미니스트 비평가에게 문학 해석 훈련뿐 아니라, 페미니스트 운동에 대한 구체적이고 현장에 기반한 지식을 갖추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그것은 여성이 쓴 책뿐 아니라, 페미니스트 신문과 정기간행물, 팸플릿, 기사, 그리고 여성폭력, 기초생활수급자 어머니, 직장 내 성적·경제적 투쟁, 강제 불임 시술, 근친상간, 교도소 내 여성에 관한 연구들을 읽는 일을 포함한다. 또한 미니애폴리스의 클레이스 출판사(Cleis Press)에서 출간된 남성 폭력에 대한 페미니스트의 저항을 다룬 앤솔로지 『Fight Back! 맞서 싸워라!』,  셰리 모라가(Cherrie Moraga)와 글로리아 안살두아(Gloria Anzaldúa)가 엮고 퍼세포니 출판사(Persephone Press)에서 출간한 『This Bridge Called My Back: Writings by Radical Women of Color 내 등골이라 불린 다리: 급진적 유색인 여성들의 글』,  2월 3일 출판사(February 3 Press)에서 출간된 『Top Ranking: Racism and Classism in the Lesbian Community 톱 랭킹: 레즈비언 공동체의 인종주의와 계급주의』, 나이아드 출판사(Naiad Press)에서 출간된 J. R. 로버츠(J. R. Roberts)의 『Black Lesbians: An Annotated Bibliography 흑인 레즈비언: 주석이 달린 참고 문헌』와 같은 페미니스트 출판물들도 포함된다. 나는 그녀에게 자신의 작업 또한 하나의 잠재적 자원, 곧 우리를 위한, 우리 운동을 위한 자원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스스로를 단지 다른 비평가나 학자들을 위해 글을 쓰는 사람으로 여기지 말고, 책을 ‘실재하고 기억되도록’ 만들며, 평범한 여성들이 그렇지 않으면 놓치거나 외면했을 글을 읽도록 고무하고, 릴리언 스미스(Lillian Smith)의 말을 빌리자면 어떤 말이 우리를 속박하고 어떤 말이 우리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지를 우리 모두가 가려내는 일을 돕는 사람으로 자신을 바라보아야 한다.

이러한 방식에 기반을 둔 최근의 도발적인 페미니스트 비평에서, 얀 클라우센(Jan Clausen)은 운동 내에서 시와 시인이 맡은 두드러진 역할이 일부 여성들로 하여금 말과 언어에 지나치게 많은 힘을 부여하게 만들었으며, 조직가나 실천적 전략가보다 시인을 대변인의 위치로 격상시켰다고 지적한다. “페미니즘은 말뿐 아니라 행동도 절실히 필요합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³ 나 역시 행동을 등한시한 채 언어에 심취하는 운동에 대한 클라우전의 불편함에 깊이 공감한다. 특히 나는 종종 대변인의 역할을 부여받는 시인이기에 더욱 그렇다. 우리 중 일부는 우리의 시적 언어에 주어지는 의례적인 동의의 수준에 대해, 그리고 사람들이 우리를 듣고 글로 쓰며 어쩌면 대상화하기도 하지만 적어도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는 의미에서는 진정으로 경청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해 점점 더 우려하고 있다. 한 친구는 그것을 ‘신뢰 없는 동의(assent without credence)’라고 정의했는데, 나는 그 말을 듣고 오히려 안도감을 느꼈다. 이런 감정을 공개적으로 말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내가 얼마나 깊이 분별 없는 박수와 찬사, 그리고 진정한 비판적 응답이 부재한 경험을 가혹하게 느껴왔는지를 보여주는 징표일 것이다. 물론 내가 시에서 행동으로 이어지는 직접적인 반응을 믿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런 연결이 바람직하다고 확신하지 않으며, 시인이 반드시 어떤 행동이 필요한지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사실 시를 낳는 것은 오히려 행동일 수도 있다. 시인은 자신과 같거나 다른 사람들, 즉 억압적인 질서를 변화시키려는 이들과 자신을 동일시할 때, 행위가 말로, 행동이 시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말이 우리를 움직이게 하거나, 혹은 우리를 마비시킬 수도 있다고 믿는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와 말투의 선택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며, 결국 누구와 말하고 누구의 말을 듣게 되는가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 우리는 말을 빗나가게 할 수도 있다. 그것은 사소화(trivialization)를 통해서뿐만 아니라, 의례화된 존중(ritualized respect)을 통해서도 일어난다. 그러나 우리는 말이 우리 영혼 속으로 스며들어 마음의 양분과 섞이게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언어에 대한 비판은 스스로를 작가로 규정하는 여성들만이 아니라, 작품을 자신의 경험이라는 잣대로 검증할 여성들로부터도 나와야 한다. 이들은 버지니아 울프의 ‘보통 독자’처럼 문학을 삶으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삶을 이해하기 위한 열쇠로 여기는 사람들이다. 나는 모든 페미니스트 시인이 자신의 작품에 대한 진정한 비평을 갈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그렇다. 단순히 기술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시인의 언어와 이미지를 진지하게 받아들여 질문을 던지는 분석 비평을. 남부의 레즈비언-페미니스트 저널 『Feminary』에서 수전 우드-톰슨이 내 시 속 ‘맹목’의 이미지 사용에 문제를 제기했던 것처럼 말이다. 나는 또한 내 작품에서 내가 단지 잘 할 줄 아는 것을 잘 해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특정 표현상의 위험을 회피하고 있는 것인지 알 필요가 있다. 이런 비평의 일부는 친구들에게서 얻을 수 있지만, 그런 원칙에 입각한 비평이 낯선 이들로부터도 온다면 모든 페미니스트 작가들에게 훨씬 유익할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작업하는 영역을 넓혀 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종류의 비평은 문학 자체에 대한 헌신뿐 아니라 독자들에 대한 헌신을 의미한다. 그리고 지금 여기의 여성 독자들만이 아니라, 책으로부터 배제되어 왔던 여성들에게까지 읽기와 쓰기의 가능성을 확장하려는 헌신이기도 하다. 흑인 비평가 글로리아 T. 헐(Gloria T. Hull)은 사유를 자극하는 아름다운 에세이 「앨리스 던바-넬슨 연구하기(Researching Alice Dunbar-Nelson)」에서, 페미니스트 학자로서 새로운 글쓰기 방식을 모색하는 자신의 여정을 그린다. 그녀는 부모, 형제, 연인, 학문적 동료, 다른 흑인 페미니스트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말을 건네고자 하는 다양한 독자들을 상상하며, “두세 개의 다른 모자를 쓴 채 교활하고 분열적인 에세이를 쓰기보다” “유기적인 글”을 쓰고자 했다고 말한다.⁴ 이 에세이에서 헐은 던바-넬슨의 생존 조카딸이 보관하고 있던 원고 자료를 다루는 과정, 그 조카딸과 맺은 관계의 역학, 그리고 이 연구와 그 발견이 자신의 삶과 흑인 여성 작가 연구 전반에 갖는 의미를 서술한다. 글의 말미에서 그녀는 흑인 페미니스트 비평 방법론의 원칙을 정리한다. 나는 그것들을 다음과 같이 인용하고자 한다.

(1) 대상에 관한 모든 것은 그녀의 삶과 작업을 총체적으로 이해하고 분석하는 데 중요하다.
(2) 올바른 학문적 태도는 ‘객관적(objective)’이라기보다 ‘참여적인(engaged)’ 것이다.
(3) 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이다. — 이는 대상과 비평가 모두에게 해당된다.
(4) 기술(description)은 반드시 분석을 동반해야 한다.
(5) 흑인이자 여성인 시각을 의식적으로 유지하는 것은 필수적이며, 계급의식적이고 반자본주의적인 관점을 갖는 것 또한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6) 원칙에 입각한다는 것은 엄격한 진실성과 ‘모든 것을 말하기(telling it all)’를 요구한다. [여기서 헐은 던바-넬슨의 일기를 편집하며 그녀의 레즈비언 관계를 발견한 사실을 포함해 여러 점을 암시하고 있다.]
(7) 연구와 비평은 학문적·지적 유희가 아니라, ‘현실 세계’에 뿌리내린 사회적 의미를 지닌 추구이다.
나는 항상 던바-넬슨이 우리에게 할 말이 많으며, 더 중요하게는, 그녀를 정직하게 다루는 것이 은유를 넘어선 의미에서 어떤 흑인 여성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했다. 마치 이런 방식으로 그녀에 대해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이 매우 구체적인 방식으로 나 자신의 생명을 ‘구했던’ 것처럼 말이다.⁵

그리하여 질문은 우리 앞에 놓인다. 진정한 페미니스트 비평이 대학 안에서, 혹은 학술 출판물을 통해 지속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가능한가? 예를 들어, 내 작업이 레즈비언의 작업임을 인정하지 않은 채 학술 강의실과 논문 속에서 정중하게 인용되고 논의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거기서는 레즈비언이라는 말 자체가 결코 등장하지 않는다. 또한 바바라 스미스의 「흑인 페미니스트 비평을 향하여」, 앨리스 워커의 에세이/묵상 「자신만의 아이(One Child of One’s Own)」가 발표된 지 몇 해가 지나고,『Signs』가 내 글 「강제적 이성애와 레즈비언 존재(Compulsory Heterosexuality and Lesbian Existence)」를 게재한 지 1년이 넘은 지금, 『Signs』의 최신호가 “사유 자체를 재사유하기”를 페미니즘 사상의 핵심으로 주장하는 장문의 논문으로 시작하면서도, 백인 중심적이고 이성애적인 여러 학계 페미니스트 비평서들을 아무런 언급 없이 논의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⁶ 『Feminist Studies』에 실린 유사하게 야심적인 논문이 “유색인 여성 혹은 명시적으로 레즈비언인 여성들의 작업에 대한 언급 없이” “페미니스트 문학 비평”을 논할 수 있다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가?⁷ 비평가가 단지 백인 중심적이며 이성애적인 경험과 독서의 단면만을 토대로 포괄적인 이론을 구축하려 할 때, 그녀가 사유를 구성하는 바로 그 개념과 구조에 대해 그것은 무엇을 드러내는가? 또한 백인 학계 페미니스트 비평가가 앨리스 워커, 바바라 스미스, 엘리 벌킨(Elly Bulkin), 미셸 러셀(Michele Russell), 토니 케이드 밤바라(Toni Cade Bambara)의 작업을 얼마나 진지하게 읽고 있는가를 우리는 물어야 한다. 그녀는 『Conditions』, 『First World』, 『Freedomways』, 『Radical Teacher』, 『Sinister Wisdom』 같은 저널들에서 그들의 비평을 찾는가? 아니면 문학 비평가로서 『Partisan Review』, 『Critical Inquiry』, 『Semiotics』, 그리고 여러 영문학과에서 발행되는 학술지들을 꾸준히 따라잡는 일을 더 중요하다고 여기며, 그렇게 함으로써 무엇이 ‘중요한가’를 결정하는 그들의 기준뿐 아니라 그들의 언어까지 흡수하고 있는가? 왜 많은 학계 페미니스트 비평의 언어는 그렇게도 냉정하고 명석하며, 매끄럽고 세련되어 보이는가? 흑인 페미니스트 비평가 글로리아 T. 헐은 자신이 의식적으로 거부해 온 비평의 문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아마도 전통적인 백인 남성 문학 연구의 특징인, (내가 몹시 싫어하는) 거만하고 재치 있지만 공허한 영국식 세련된 어조에 대한 (과잉된) 반응으로서, 나는 대개 던바-넬슨을 한결같이 진지하게, 그리고 언제나 애정을 가지고 논의한다.⁸

자신의 작업이 “‘현실 세계’에 뿌리내린 사회적 의미를 푸구하는 것”이라고 믿는 페미니스트 비평가에게 필수적인 것은 권력에 대한 명확한 이해이다. 대학을 통해 배분되는 문화가 어떻게 어떤 이들에게는 힘을 부여하고(empower) 다른 이들에게는 힘을 빼앗는지(disempower), 그리고 그녀 자신이 피부색, 이성애성, 경제적·교육적 배경 혹은 그 밖의 요인으로부터 비롯된 성찰되지 않은 특권의 위치에서 글을 쓰고 있을 수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실제로 그랬듯이) 흑인 여성 작가의 소설에 대해 쓴다면, 그 소설에 대한 나의 해석이 백인·중산층·유대인·레즈비언 페미니스트로서의 해석, 즉 복합적인 관점이지만 결코 권위 있는 관점은 아님을 분명히 자각해야 한다. 백인으로서 나는 이 문학이 나에게 미친 영향과 인상을 설명하고, 왜 다른 백인 여성들에게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지 말하려는 시도를 넘어서는 어떤 특별한 조망이나 권위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나는 어떤 영역에서는, 경험과 연구가 결합되어 나보다 훨씬 더 깊은 통찰과 인식을 지닌 흑인 여성 학자보다 더 진지하게 받아들여질 것이다. 내가 백인이기 때문이고, 레즈비언임에도 불구하고 종종 의도적으로 그렇게 인식되지 않기 때문이며, 학자나 비평가, 시인, 소설가로서의 유색인 여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나의 특권, 나아가 나의 신뢰성을 지탱하는 구조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백인 피부, 이성애, 계급적 배경이라는 모든 혹은 많은 특권을 가진 여성이 그로 인해 글을 쓰거나 비평할 자격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모든 여성이 동일한 특권을 지닌 것처럼 읽고, 생각하고, 쓰고, 행동하지 않을 책임이 있으며, 특권이 어떤 특별한 통찰력을 부여한다고 가정하지 않을 책임이 있다. 그녀는 자신이 하는 타협에 대해, 글을 쓰기 위해 앉을 때 느끼는 두려움과 떨림에 대해 가능한 한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과 매우 다른 문화적 배경이나 근원에서 글을 쓰는 여성들의 작품을 마주할 때,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혼란스러움이나 자신의 이해가 미치지 못함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애초에 우리를 포함하도록 결코 설계되지 않았던 전통, 곧 읽기, 말하기, 쓰기, 비평하기의 방식이 지닌 한계를 거부하는 일에서 서로를 지지해야 한다.

물론, 그 전통, 즉 학계의 관점에서라면 다른 질문들이 제기될 수 있고 실제로 매일 제기된다. “당신은 문학을 정치적 변화의 바람에 책임지게 만들려는 것 아닙니까?” “정치와 예술은 언제나 재앙적인 동반자가 아니었나요?” “페미니스트 비평가들은 작가의 개인적 의도와 상관없이, 어떤 당의 노선 같은 정치적 올바름에 따라 작품을 평가해야 합니까?” 그러나 이런 질문들은 결코 보이는 것처럼 순수하거나 정치적으로 중립적이지 않다. 그것들은 유색인, 가난한 사람들, 백인 여성, 레즈비언과 게이 남성들의 자기 규정과 자기 사랑에 깊이 적대적인 지배적 백인 남성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예술이 정치적이면서 동시에 시대를 초월할 수 있을까?” 모든 예술은 정치적이다. 이는 누가 만들도록 허락받았는지, 무엇이 그것을 존재하게 했는지, 왜 그리고 어떻게 그것이 정전(canon)에 편입되었는지, 그리고 우리가 왜 여전히 그것을 논의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분명해진다.

나는 우리가 여성으로서의 억압을 자각하는 동시에, 우리 사이의 차이 또한 깊이 인식하는 여성 운동, 진정한 여성 해방 운동을 전제로 삼을 때, 이전보다 훨씬 더 복잡한 영역으로 들어서게 되며, 그에 따라 문학에 관한 질문들 자체가 새로운 질문들로 변한다고 믿는다. 흑인 페미니스트 비평가 메리 헬렌 워싱턴(Mary Helen Washington)이 흑인 여성에 의한, 그리고 흑인 여성에 관한 소설 선집 『Midnight Birds』에 흑인 레즈비언 작가의 단편을 (그 정체성이 명시되지 않은 채) 단 한 편 포함시키고, 서문에서 흑인 레즈비언의 존재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을 때, 그녀는 비평가로서 자신이 던질 수 있는 질문의 범위를 스스로 제한한 것이다. 백인 페미니스트 비평가가 유색인 여성을 자신의 분석에 별도의 장이나 각주로 단순히 덧붙이거나, 아예 그들의 존재를 지워버릴 때, 그녀는 단순히 생략하는 것이 아니라 왜곡을 일으키는 것이며 그녀의 비평의 유기적 짜임은 바로 그 왜곡으로 인해 약화된다. 그녀가 의식적으로 백인 중심적 독단의 관점을 벗어나 작업하려 할 때, 그녀는 자신의 분석이 달라지고 있음을 느낄 것이다. 그녀는 유색인 여성의 글뿐 아니라 백인 여성의 글에 대해서도 이전과는 다르게, 그리고 더 멀리 보게 될 것이다. 인종차별과 동성애 혐오에 대한 의식은 단순히 인종차별적 언어나 동성애 혐오적 고정관념을 삭제하려는 노력(물론 그것이 필요한 시작점이긴 하지만)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비평이라는 장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려는 작업이며, 백인성과 이성애를 절대적 권위의 위치가 아니라 상대적인 상태로 경험하려는 노력이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들 수 있다. 그것은 우리가 이전에는 듣지 못했던 것들을 듣게 하고, 익숙한 자아와 새로 드러나는 자아 사이에서 분열감을 느끼게 한다. 검증되지 않은 충성심에 의문을 품게 하며, 즐거운 동료 관계나 농담을 가능하게 하지 않는다. 우리 자신의 과거 글을 조급한 마음으로 다시 읽게 만들고, 한때 중요하다고 여겼던 탐구의 주제 목록을 바꾸어 놓는다. 그리고 이러한 일련의 변화는 우리가 문학에서 무엇을 발견하는가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

‘Women in Print’ 컨퍼런스의 몇몇 워크숍에서 나는 바람직하고 필요하지만 아직 창조되지 않은, 새로운 종류의 문학이 묘사되는 것을 듣고 있다고 느꼈다. 유색인 여성들과 백인 여성들은 소설가로서든 비평가로서든, 자신과 다른 여성들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법을 배우는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리의 차이들이 여성으로서 우리가 공유하는 공통점을 얼마나 약하게 만드는가?”라는 물음도 던져졌다. 우리는 비평가나 리뷰어가 자신의 정치적·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명확한 감각을 어떻게 기르고, 자신이 비평하려는 작품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정직하게 위치시켜야 하는지를 이야기했다. 또한 상상력을 발휘하는 작가가 단지 자신의 계급이나 배경에 속한 여성이 아니라, 다른 여성들을 향해 책무성을 가지고 글을 쓰는 법을 배울 수 있는지, 고정관념에 저항하며 온전한 인물을 창조하려 애쓰는 일이 어떻게 단지 글쓰기만이 아니라 삶의 변화를 요구하는 일이 될 수 있는지 논의했다. 문학 속에서 오랫동안 지속된 비가시성과 왜곡된 재현을 보상하려는 충동, 피부색이 검거나 레즈비언 혹은 그 둘 다인 ‘문학적 슈퍼우먼’을 만들어내려는 욕망에 대해서도, 그리고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페미니즘 버전을 거부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한 워크숍에서는 두 명의 백인 맹인 레즈비언, 한 명의 푸에르토리코 레즈비언, 한 명의 흑인 레즈비언, 그리고 한 명의 백인 노동계급 레즈비언이 문학 속에서 자신과 같은 여성들을 발견하고 싶다고 말했다. “항상 전면에 나서는 것만이 아니라, 배경에서도요. 그 장면의 일부로서, 거기서 우리가 진지하게 다뤄질 수 있다면 좋겠어요.” 한 여성이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어둡거나 밝거나, 장애나 나이, 혹은 신체 이미지에 관한 고정관념을 벗어난, 경직되고 환원적이며 반복적인 이미지 만들기를 넘어서는 시적·산문적 언어를 상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비평가의 과제 중 하나가, 독자이자 작가로서 우리 앞에 그러한 가능성들을 계속 열어 두는 일일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내가 영문학을 전공하던 학부 시절, 영어로 쓰인 “주요 비평 텍스트들”이 여럿 있었다. 그것들은 모두 영국 남성들이 쓴 것이었고, 필수적인 고전으로 여겨졌다. 시드니의 『시의 옹호』, 워즈워스의 「서정 민요집 서문」, 콜리지의 『문학 평전』 서문, 엘리엇의 『전통과 개인의 재능』, 엠슨의 『일곱 가지 유형의 모호성』 등이 그 예였다. 그리고 그 목록은 지난 30년 동안 더 길어졌다. 이 강연문을 쓰기 시작했을 때, 나는 현재의 미국 페미니즘이 불과 십여 년 만에 그에 견줄 만한 중요한 비평 텍스트들을 만들어 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확장된 의미에서 문화 비평이기도 했다. 『성 정치학』이 그 야심찬 종합과 높은 가시성을 통해 길을 열었다면, 바바라 스미스의 「흑인 페미니스트 비평을 향하여」는 기존의 성과를 인정하면서도 백인 페미니스트 비평과 흑인 문학 비평 양쪽의 심장부를 찌르는 대립적이면서도 필수적인 다음 단계였다. 나는 맵 시그레스트의 「남부 여성 글쓰기: 온전함의 문학을 향하여」, 여기서 인용한 얀 클라우전과 글로리아 T. 헐의 글, 엘리 벌킨이 『레즈비언 소설』과 『레즈비언 시』에 쓴 서문들을 떠올린다. 또한 앨리스 워커의 「우리 어머니들의 정원을 찾아서」와 「자신만의 아이」, 글로리아 안살두아의 「방언으로 말하기: 제3세계 여성 작가들에게 보내는 편지」, 그리고 새로운 형태의 레즈비언-페미니스트 문학 이론이라 할 수 있는 아리나 클레피시의 「레이철 로봇닉의 일기」를 생각한다. 나는 학계의 페미니스트 문학 비평가들이 운동 내 활동가이기도 한 비평가들이 제기한 물음들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기를 바란다. 또 학계의 페미니스트 비평가들이 『Azalea』, 『Conditions』, 『Feminary』, 『Sinister Wisdom』과 같은 저널들을 찾아 읽고, 그것들을 있는 그대로 보기를 바란다. 그것들은 단일한 노선을 추구하는 일체화된 매체가 아니라, 지배적인 문학 비평의 활동과 그것이 반영하는 문화를 근본적으로 의심하는, 강력하고 전복적인 역사적 주체들이며 교실에 반드시 필요하다. 나는 페미니스트 비평이 우아하고, 호감을 사고, 존경받고자 하는 유혹을 버리고, 그 대신 강인하고, 거침없으며, 위험해지기를 바란다. 나는 대학의 페미니스트 비평가들이 자신들의 작업을 정치적 힘으로서, 그리고 우리 운동의 생존을 위한 소통망의 일부로서 진지하게 받아들이기를 바란다. 나는 우리 모두, 작가, 비평가, 편집자, 학자, 조직가, 서점 운영자, 인쇄인, 출판인, 학생, 그리고 교사가 서로의 작업이 지닌 힘을 나누기를 바란다.

페미니스트 문학 연구 심포지엄 기조연설, 미네소타 대학교, 미니애폴리스, 1981.


 

각주

 

  1. 케이트 밀렛 (Kate Millett), 『성 정치학 (Sexual Politics)』 (Garden City, N.Y.: Doubleday, 1970), p. xii.
  2. 바바라 스미스 (Barbara Smith), “흑인 페미니스트 비평을 향하여 (Toward a Black Feminist Criticism),” 모든 여성은 백인이고, 모든 흑인은 남성이고, 하지만 우리 중 일부는 용감하다: 흑인 여성 연구 (All the Women Are White, All the Blacks Are Men, but Some of Us Are Brave: Black Women’s Studies), 편집: 글로리아 T. 헐, 패트리샤 벨 스콧, 바바라 스미스 (Old Westbury, NY: Feminist Press, 1982), p. 154.
  3. 얀 클라우센 (Jan Clausen), 『시인의 운동 (A Movement of Poets)』, pamphle (Brooklyn, N.Y.: Long Haul, 1981).
  4. 글로리아 T. 헐 (Gloria T. Hull), “앨리스 던바-넬슨 연구하기 (Researching Alice Dunbar-Nelson),” 모든 여성은 백인 (All the Women Are White), pp. 193-194.
  5. Ibid, p. 193.
  6. 마이라 젤렌 (Myra Jehlen), “아르키메데스와 페미니스트 비평의 역설 (Archimedes and the Paradox of Feminist Criticism),” Signs: Journal of Women in Culture and Society 6, no. 4 (Summer 1981):  571-600.
  7. 주디스 가디너 (Judith Gardiner), 엘리 벌킨 (Elly Bulkin), 레나 그라소 패터슨 (Rena Grasso Patterson), 애넷 콜로드니 (Annette Kolodny), “페미니스트 비평에 관한 교환: ‘지뢰밭을 뚫고 춤추기’에 대해 (An Interchange on Feminist Criticism: On ‘Dancing through the Minefield’),” Feminist Studies 8, no. 3 (Fall 1982): 636.
  8. 글로리아 T. 헐(Hull), pp. 193-194.
  9. [A.R., 1986: 맵 시그레스트 (Mab Segrest), “남부 여성 글쓰기: 온전함의 문학을 향하여 (Southern Women Writing: Toward a Literature of Wholeness),” My Mama’s Dead Squirrel: Lesbian Essays on Southern Culture (Ithaca, N.Y.: Firebrand, 1985).]
  10. 엘리 벌킨 (Elly Bulkin), 편집, 『레즈비언 소설: 앤솔로지 (Lesbian Fiction: An Anthology)』 (Watertown, Mass.: Persephone, 1981); 그리고 엘리 벌킨과 조안 라킨 (Joan Larkin), 편집, 『레즈비언 시 (Lesbian Poetry)』 (Watertown, Mass.: Persephone, 1981; distributed by Gay Press, Boston, Massachusetts).
  11. 글로리아 안살두아 (Gloria Anzaldúa), “방언으로 말하기: 제3세계 여성 작가들에게 보내는 편지 (Speaking in Tongues: A Letter to Third World Women Writers),” 내 등골이라 불린 다리 (This Bridge Called My Back), 편집: 체리 모라가 (Cherríe Moraga)와 글로리아 안살두아 (Gloria Anzaldúa) (Watertown, Mass.: Persephone, 1981).
  12. 아리나 클레피시 (Irena Klepfisz), “레이철 로봇닉의 일기 (The Journal of Rachel Robotnik),” Conditions 6 (1980): 1.  [A.R., 1986: Reprinted in Irena Klepfisz,『다른 울타리 (Different Enclosures)』 (London: Onlywomen, 1985).]

특권의 문제- 앙드레아 스미스

The Problem with “Privilege”
특권의 문제

앙드레아 스미스  (한디디 옮김)

자신들이 누리는 젠더/인종/성/계급/등등을 둘러싼 특권에 대해 성찰하는 방식의 운동, 정치적 프로젝트에 대해서.
“나는 누구고, 어떤어떤 특권을 누려왔다”는 고백은 그 발화의 순간, (이러한 특권을 갖지 않는 사람들이 고백자를 용서하거나 면죄해줄수 있는 청자로서 일시적인 권력을 갖게 된다는 점에서) 어떤 효과를 갖는 것 같지만, 사실 이러한 의식ritual 은 그것이 저항하고자했던 그 지배적인 구조를 재-공고화하는데 기여한다. 이 의식 속에서 백인/남성/이성애자/etc.는, 자기성찰이 가능한 주체로 재성립되는 한편, 인종화/젠더화된 주체들은 그러한 자기성찰을 위한 사건이 되기 때문이다.
변혁을 위한 정치적 프로젝트는 반드시 우리 자신의 근본적 재구성을 동반해야한다. 그러나, 그러한 개인의 변혁은 사회/정치적 변혁속에서 (그와 함께) 일어날 수 밖에 없다. 다시 말해, 특권의 해체는 개인의 고백 혹은 스스로를 새로운 위치에 두고 생각해보려는 노력에 의해 가능한게 아니라 그러한 특권을 가능케하는 구조를 해체하기 위한 집합적인 구조의 생산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특권을 해체하고 싶다면, 우리는 반드시 그 안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구조를 바꾸고 그럼으로써 지금의 우리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고백하는 주체]
데니사 다 실바는 서구의 주체가 자기성찰과 분석의 능력을 갖고 있는 자기규정적이며 보편적인 주체라고 분석한다. 그(서구적 주체)는 자신을 자신이 아닌 “타자”와 비교한다. “타자”는 물론 인종화된다. 이러한 인식 위에서 실바는 인종화/식민화된 사람들 (타자들)이 당면한 문제가 그들이 “비인간화”되어 왔다는 점이라고 믿는 사고를 비판한다. 근본적인 문제, 그러나 그동안 주목받지 못해온 문제는 “인간” 그 자체가 인종적 프로젝트라는 사실이다. “인간”은 보편성에 호소하는 프로젝트이며, 특정한 “타자” 위에서, 그것에 반해서만 가능한 프로젝트이다.
결론적으로 두가지 문제가 남는다. 첫째. 젠더화/식민화된 타자로 위치지워진 자들은 그들이 자기규정적 주체가 되는 순간 (다시 말해, 완전한 “인간”이 됨으로써) 해방이 뒤따를 것이라고 가정한다. 그러나 우리가 염원하는 인간성은 여전히 또다른 젠더화/식민화된 타자의 억압에 기대고 있다는 사실이 망각된다. 해방을 위한 투쟁이 또다른 억압의 산물이 된다는 것.
이런 분석은, “해방”이란 전혀 다른 자아들, 즉 자기를 다른 사람들과 사물들과의 급진적 관계성 속에서 이해하는 것을 요청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목표는 반인종적/반식민적 어휘의 습득이 아니라 자신을 다르게 이해하는 것. 즉, 자신이란 존재가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들을 통해서만 구성된다는 것을 보는 것이다.

둘째. 해방을 “인간화”로 간주할 때 해방은 인간성을 부여받기 위해 가치를 증명하는 문제가 된다. 만약 그들이 우리를 더 잘 안다면, 그들은 우리가 자신과 마찬가지로 “인간”이라는 것을 깨닫고, 인간의 지위를 부여할거야. 그 결과, 반인종적 운동과 학문적 프로젝트들은 종종 민족지적 다문화주의라는 덫에 갇히고 만다. 인간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스스로를 민족지적 대상으로 위치짓고, 백인주체가 우리의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평가하게 하는 것이다.
레이 쵸는 이러한 민족지적 덫이라는 위치에서 네이티브에게 가능한 유일한 수사학적 자리는 “저항하는 소수집단”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계속 불만을 얘기하면 체제가 무엇인가 던져줄것이라는 인정/승인의 정치학 속에서 구축된 자세posture. 쵸의 작업 위에서, 이 글은 현제의 경제체제 안에서 형성된 또하나의 자세에 대해, 어떻게 그러한 자세가 생산되었는가를 살펴볼 것이다. 그것은 바로 자기성찰적인 입식자/백인 주체이다. 이 자기성찰적 주체는 다양한 반-인종적 행사에 등장하는데, 그들(특권적 주체)은 자신이 어떻게 식민지적/젠더화된 주체에 노출됨으로서 식민주의의 복잡함과/또는 백인의 패권에 대해 배울수 있었는지 설명한다.

여기서 네이티브는 자기성찰이라는 과정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들은 단지 자신들이 듣는 고백의 가치를 평가할 뿐이다. 결과적으로 고백하는 주체들은 종종 심하게 긴장한다. 내가 나의 특권을 다 말했나? 적절한 방식으로 고백하고 있나? 혹시 청중중에 누가 실수를 발견하거나 내가 정말로 반인종적 주체가 되었는지 질문하면 어떻하지? 그럴경우, 그 주체는 더 많은 자아성찰을 하게 되고 이후 더 많은 고백을 하게 될 것이다. 특권의 고백은 결국 (반인종주의/반식민주의를 주장하지만) 입식자/백인 주체의 구성을 돕는 전략이 되고 만다.
자기성찰은 백인/입식자적인 주체의 구성을 돕는다. 물론, 이 글도 자기성찰이라는 논리를 피해갈 수 없다. 또한, 설령 반인종차별 정책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네이티브를 문제적으로 재현했다고 해서 그것이 이 사람들이 특별히 결함이 있다거나 그들의 학문이 가치가 없다는 걸 지시하는 것도 아니다. 마찬가지로, 반인종주의 워크샵에서 특권을 가진 “고백하는” 주체들은, 자신들이 정착한 땅의 식민주의 혹은 백인들의 패권에 맞서 싸우기 위해 그렇게 하고 있으며, 그들의 연대는 대단히 중요하다. 더 나아가, 유색여성학자들이나 활동가들이 지적했듯이, “억압받는” 사람들과 “억압하는 자”들 사이에는 사실 뚜렷한 구별이 없다. 개인들은 다양한 맥락 안에서 고백자로서의 혹은 고백을 심판하는 자로서의 다양한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그러니 이 분석의 요점은 인종화/식민화된 사람들이 애시당초 보여지고 이해되는 보다 큰 다이나믹을 설명하는 것이다.
선주민들은, 그들이 충분히 이해되거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억압받고 있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사실 네이티브를 “알고자”하는 이 욕망 자체가 선주민들의 잠재적인 힘을 파악하고 길들여 정복국가에 복속하고자하는 프로젝트의 일부이다. 이로써 네이티브의 투쟁은 단순히 그들의 요구를 알리는 것, 그래서 그들의 주장이 정복국가에 인식되도록 하는 것으로 전락한다. 일단 그들의 요구가 파악되면, 그들은 보다 쉽게 관리되고, 포함되며, 훈육된다. 그러므로 탈식민주의 프로젝트는 오드라 심슨이 “민족지적 거부”라고 부른 것, 알려지는것, 확실히 알만해 지는 것에 대한 거부를 요청한다. 탈식민주의의 정치는 입식 식민주의를 넘어서는, 그러므로 알수없는 이론, 지식, 사상, 분석의 증식을 요청한다.

[자기성찰을 넘어서]
이러한 분석을 바탕으로 우리의 프로젝트는 자기의 수양, 혹은 심지어 집단적인 자기수양에 기반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아직 언어로 표현할수 없는 새로운 세계들과 미래상을 창조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따를 수 있는 단순한 반-억압의 공식은 없다. 우리는 끊임없는 시도와 실패, 급진적인 실험의 와중에 있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특권을 해체할 수 있는 몇가지 새로운 방식의 가능성들을 제안하고 싶다. 이는 앞으로 가기 위해 “고치는” 과정이 아니라, “너머”에 대한 우리의 집합적 상상력에 몇가지 덧붙이는 것이다. 이러한 탈식민주의적 프로젝트들은 우리의 특권에 대해 보다 잘 “알기”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모르는 것을 생산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반인종/반식민주의적 자아-성찰이라는 프로젝트와 대비될 것이다.
이들은 남미에서 특히 많이 보이는 “권력을 구성함으로서 권력을 탈취하는” 모델에 기반한다. 이러한 모델들은 선주민 운동에 깊은 영향을 받았으며 땅없는 농민 운동, 공장운동, 그리고 다른 여러 투쟁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 모델들은 또한 미국과 다른 여러곳의 다양한 사회정의조직들에 의해 활용되었다. 이러한 모델들을 뒷받침하는 원칙은 바로 우리가 지금 살고 싶은 세상을 실제로 생산함으로서 자본과 국가에 대항하는 것이다. 이 그룹들은 위계, 지배, 통제 대신, 수평성, 상호부조, 관계맺기라는 원칙에 기반한 대안적 통치 시스템을 개발하고자 한다. 이러한 세계를 생산하는 그 처음부터 주체들은 변한다. 이 운동들은 남미의 혁명적 선두 모델로 조직되었다가 “기계적 레닌주의”모델이라고 비판받게된 권위적/위계적 모델에 대한 대응으로 발전되었다. 이 권위적 모델들은 자신들이 싸우고 대체하려한 시스템과 같은 시스템을 재생산 했을 뿐 아니라 본질적으로 당파적이었다. 이에, 모두가 참여할수 있는, 자신의 일상생활을 기반으로한 모델을 구성하는 운동들이 시작되었다.

수많은, 다른 통치의 방식을 구성하는 이러한 운동이 지향하는 정치는 미국내의 많은 활동가 그룹에 만연한 “안전한 공간”이라는 개념에 도전한다. 안전한 공간이라는 개념은 특권이라는 개념으로부터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이는, 우리가 일단 우리의 젠더/인종/계급적인 특권을 고백하면, 그럼으로서 타자들이 이 특권으로부터 안좋은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는 안전지대를 만들어낼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가 이성애적 가부장주의, 백인우월주의, 식민주의, 또는 자본주의를 해체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고백된 특권들이 “안전한 공간”에서 실재로 사라진 것은 결코 아니다. 결과적으로 어떤 사람이 이러한 공간들 속에서 그/녀의 특권에 대한 죄책감을 가질때, 그/녀는 그 공간을 “안전하지 않은” 곳을 만들었다고 비난받게 된다. 이런 수사적인 전략은 오직 특정한 특권적 주체만이 이 공간을 “안전하지 않은” 곳으로 만든다고 가정한다. 마치 다른 모두는 이성애자 가부장주의, 백인우월주의, 식민주의, 자본주의에 연루되지 않았다는 듯이. 우리의 초점은 세계 전체를 안전하지 않게 만드는 커다란 구조들로부터 관계적인 행동을 이동한다. 덧붙여 “안전하지 않음”에 대한 비판은 인종주의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는 유색인들에게도 부과된다, 단지 그들이 목소리를 높여서 그 공간을 안전하지 않게 만들었다는 이유로 말이다. 결국 안전한 공간의 문제점은 안전한 공간이 가능할거라는 가정 그 자체이다.

대조적으로, 식민지, 가부장제, 백인패권주의로부터의 망명지로서의 안전한 공간이라는 생각 대신, 루시 길모어는 안전한 공간이 실재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우리가 원하는 것을 실재로 불러오는 연습의 공간이라고 제안한다. “권력을 구성하는” 모델은 이 제안을 따라 단지 자신들이 살고 싶은 세계를 지금 여기에서 생산하기 위해 노력한다. 한 예를 들자면, “유색인 여성을 위한 공간”이 만들어졌을때 우리는 그 공간이 안전하다는 가정에 의문을 제기했다. 사실 그곳은 위험한 공간이다. 우리가 깨달은 것은 우리는 서로의 연대를 가정할 수 없다는 것, 연대는 실제로 만들어내야만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억압적이지 않게” 행동하고 있다는 가정 대신 실제로 도움이 되었던 한가지 전략은 우리가 백인우월주의/식민주의/이성애적 가부장제/등의 구조에 연루되어 있음을 가정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었다. 우리의 정치과 실천에 있어 특별히 문제적인 이슈들과 관련해 스스로를 교육할수 있는 공간들을 구성함으로서 이러한 가정들을 우리의 조직에 구조화했다. 장애, 반흑인 인종주의, 정착민식민주의, 시오니즘과 반아랍 인종주의, 트랜스 포비아 그리고 또다른 문제들이 이러한 이슈에 포함되었다.그러나, 이러한 공간에서 우리는, 억압을 둘러싼 우리 개개인의 복잡성을 무시하지 않는 한편, 집합적으로 우리의 정치와 실천을 변화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들을 개발했다. 다시말해 이 공간은 고백자와 고백을 듣는자의 다이나믹을 만들지 않았다. 대신, 우리는 우리 모두가 이 억압적 구조들에 관련되어 있으며 그것을 해체하기 위해 함께 일해야한다고 가정했다. 결과적으로, 내 경험에 의하면 이러한 공간은 개인적, 사회적 변화에 통합되는 우리 스스로의 능력을 촉진한다. 아무도 그가 대중을 향해 고백해야하는 특권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나쁜 사람으로 낙인찍힐까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결론]
특권의 정치는 우리가 얼마나 억압적 구조에 의해 구성되어 왔음을 알리는데 중요한 기여를 해왔다. 그러나, 특권을 고백하는 의식이 진화함에따라 그것은 우리의 초점을 세계를 바꾸기 위한 사회운동에서 개인적인 자기수양으로 옮겨버렸다. 게다가 그것은 백인 패권주의자/식민주의자들의 주체 개념, 즉 자기-성찰에 의해 형성되는 주체, 타자들 위에서 타자들에 반하여 구성되는 자아로서의 주체 개념에 기대고 있다. 개인과 사회의 변혁은 연결되어있다는 활동/학계의 중요한 통찰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하는 한편, 대안적 프로젝트들은 특권보다는 특권을 생산하는 구조에 주목하려 해왔다. 이러한 모델이 “해답”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해방을 위한 운동적/지적인 우리의 프로젝트들이 계속해서 변해야 한다는 것을 특권의 정치의 계보학은 보여주었다. 우리의 상상이 백인 패권주의, 식민주의, 등등에 의해 제한되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어떤 생각도 “완벽”할수는 없다. 또한 지금 하고 있는 것이 과거에 해온 것의 완전한 폐기 위에서 이루어질수도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특권을 넘어서는 것 뿐 아니라, 특권을 주장하는 자아의 개념을 넘어설때, 우리는 우리가 지금 상상할수 없는 미래의 가능성을 향해 우리 스스로를 개방한다.

원문
The-Problem-with-Privilege-ASmith

https://andrea366.wordpress.com/2013/08/14/the-problem-with-privilege-by-andrea-smith/

바르셀로나에서 프랑스 남부까지

5.8
글로리아씨네서 하루 더 묵었다. 그간 밀린 사진을 정리하고 메모를 옮겼다. 하고 싶은 것 없이, 스스로 준비하지 않은 일들은 퍽 달갑지 않다. 왜 여기에 있나 곰곰이 생각해 본다. 거기에서 하지 못한 일들을 여기에서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5.9
알케니즈(Alcañiz) 근처까지 왔다. 하나의 마음을 이어 달리는 내내 함께였다. 행복했다. 100km를 조금 넘게 달리면서 가장 긴 오르막과 내리막을 만났다. 시인은 ‘간신히’라고 말하고 소설가는 ‘겨우’라고 말한다. 그 사이를 저울질하며 달렸다. 이름씨는 세 번째 넘어졌다. 다친 곳이 반복되면서 상처가 커졌다.
일기예보는 비가 와도 1mm 안팎이라고 했는데 퍽 많이 왔다. 공동묘지 바로 옆 주차장에 텐트를 쳤다. 수많은 죽음을 객들은 애써 외면하고 비바람만이 애도한다. 텐트 안은 아늑하다.
몸을 닦다 지난번에 넘어지면서 생긴 멍을 봤다. 서서히 사라지는 중이다. 때아니게 김승희 <스무살의 푸른시간>이 떠올랐다. 거기서 시계풀의 편지를 봤는지는 도통 모르겠다. 얄팍한 상상은 멍을 보고서 겨우 멍을 말한 책을 떠올리는 정도이다. “하늘이 푸르른 것은 그런 멍든 사람들이 하늘을 등지고 푸른 언덕 위에 가슴을 대고 아아 가만가만 자신의 파아란 상처를 울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말을 스물을 두 번 엮고서야 이해하게 된다. “못 박힌 사람은 못 박힌 사람에게로 갈 수가 없다.”지만 마음은 다시 한번 신기루가 아니고 ‘내 못을 빼는 여행이 돼야지’라고 다짐해본다. 첫 다짐이다.

5.10
몸이 갑자기 아파서 30km 정도만 달리고 말았다. 어제 안장을 높이면서 약간의 무리가 있었나 싶다. 알케니즈는 옛 아라곤의 수도라고 한다. 작고 아름다운 도시다. 2.5유로를 내고 성을 관람했다. 어느 호텔이 성을 사용하고 있다. 벽화가 제법 아름다운 곳이다. 성 근처 공원에 텐트를 쳤다. 실라스라는 아프리카 카보베르데(CAbo Verde)에서 온 이민자를 만났다. 5년 정도 됐다고 하는데 스페인은 이민자에게 박하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는 외로워 보였고, ‘쎄나’라는 강아지만이 그의 유일한 친구처럼 보였다. 함께 바에 가서 다른 이민자들과 잠깐 어울렸다. 처음 실라스는 한 짐 가득 실은 자전거를 보고, 여행자가 아니라 이민자라고 생각했단다. 그게 반가워 기꺼이 아는 척했단다. 낯선 곳, 낯선 사람이지만 스페인에서는 공통으로 별개의 존재들이라서 쉽게 어울렸다. 잠깐이지만 즐거웠다.

5.11
수돗가에서 양치하는데, 개와 고양이가 함께 밥을 먹는다. 노인은 똑 그만큼 나이를 먹은 개와 함께 산책하며 동네 고양이를 챙긴다. 개와 고양이와 노인, 그중 누구라도 없어선 안 될 것 같은 풍경을 만든다.

자전거를 탈 수 없을 만큼 아파서 병원을 알아봤다. 의사를 만나는 데만 50유로라고 한다. 비싸다.

산타 마리아 성당. 어디에나 산타 마리아 성당이 있나 보다. 지난번 아라곤에서 들렀던 성당보다 훨씬 크고 웅장하다. 경이롭다. 이곳에 머물면 저절로 신앙이 베일 것만 같다. 성당 앞 레스토랑에서 커피를 마셨다. 스페인에서 마신 것 중 가장 좋다. 매니저는 친절이 베인 사람이다. 길가 테라스에 앉아 성당 바깥을 찬찬히 살피는데, 높이와 굴곡마다 다른 새들이 둥지를 틀고 있다. 황새와 비둘기, 제비, 까마귀가 한데 있다. 성당은 그 모두를 포용하고 그 언저리에 사람의 자리를 남겨둘 만큼 크다. 새들은 분주하고 사람은 여유롭다.

며칠 쉴 요량으로 자전거를 접고 바르셀로나행 렌페를 타기로 했다. 역 뒤편에 버려진 성당이 있다. 벽은 흡사 전쟁의 상흔을 지닌 것처럼 곳곳이 패었고 인적은 간데없고 철탑에만 황새가 둥지를 치고 있을 뿐이다.

밤늦게 바르셀로나에 도착했다. 습한 공기가 무겁게 들이쳤다. 스쾃센터에서 한다는 파티를 찾아서 여차여차 스쾃한 곳에서 머물고 싶다고 했다. 이미 꽉 차서 안 된다는 말을 들었다. 어느 공원을 찾아 들어가 텐트를 쳤다.

5.12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앞에서 커피를 마셨다. 웜샤워를 컨택하려고 했는데, 너무 갑작스러운 터라 번번이 거절당했다. 나 때문에 부랴부랴 하는 일이라 내내 미안했고, 동시에 불편했다. 바로셀로네타 해변(Playa de la Barceloneta)에 갔다가 스쾃한 곳에서 살고 있다는 일행을 만났다. 엮여 있는 이들이 모두 친구인가 했는데, 한쪽은 30km떨어진 곳에 사는 이들, 한쪽은 시내 어딘가에 사는 이, 또 다른 일행은 어제 해변에서 모든 걸 털린 일행이었다. 누가 봐도 태초부터 친구인 양 전혀 위화감 없이 잘 섞여 있다. 해변에서 텐트를 칠 요량이었는데 어제 모든 걸 털린 일행들을 보고 스쾃한 곳에 같이 가기로 했다. 그러다 서로 처음 보는 사람이고, 믿어선 안 된다며 자기 쪽으로 함께 가자고 했다. 양 쪽 다 똑 같이 그렇게 말했다. 급기야 주먹질까지. 그곳에 있기 갑자기 불편해져서 내일 낮에 찾아가기로 하고 어제 텐트를 쳤던 곳에서 다시 짐을 풀었다. 퍽 잘 조성된 공원이었는데 이름을 모르겠다.

5.13
시내 근처에 있는 스쾃장소를 찾아갔다. 바벨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가진 곳이고, 상당히 넓은 장소다. 이름답다고 해야 하나 우리만 다른 말을 했다. 스페인어, 프랑스어, 영어 중 택해서 말할 정도로 모두 유창하다. 바벨에는 모로코 이민자들과 마드리드 출신의 스페인 사람, 아프리카 기니에서 온 사람, 그리고 우리가 있었다.
낮에 한국 유학생을 만나 광대 결핵약을 받았다. 약이 너무 많아 입국을 거부당할까 수소문해서 보내 놓았다. 그가 자전거를 맡아 준다고 해서 밤 10시께 다시 만났다. 하숙생이고 공간이 좁아서 1대만 가능할 것 같다고 했다. 내 자전거와 트레일러 짐을 맡겼다. 고마움보다 미안함이 훨씬 컸다. 바벨까지 40여분 정도를 걸어갔다.

5.14
비가 오락가락한다. 피카소 미술관을 관람했다. 시장에서 냄비를 하나 샀다. 처음 7유로를 불렀는데 5유로에 샀다. 손잡이가 특이해서 ‘팔랑 귀’라고 부르기로 했다.

5.15
종일 비가 내렸다. 구엘 공원을 둘러보고, 플라밍코를 봤다. 비에 흠뻑 젖어서 돌아올 땐 메트로를 탔다. 이름씨한테 바르셀로나에서는 메트로를 안 탈 생각이냐고 물었더니, 유럽 전체를 통틀어서라고 한다. 바르셀로나는 어디를 둘러도 카탈루냐 기가 걸려있다. 분리 독립주의자들인가, 카탈루냐 주의 주도여서인가, 표지판도 스페인어와 카탈루냐 어가 같이 적혀있고, 만나는 이들마다 바르셀로나는 스페인이 아니라고 한다.

5.16
사흘 전 맡긴 자전거를 찾아왔다. 이름씨와 광대는 이런저런 일로 나갔고, 나는 내내 바벨에서 다비드 씨한테 아프리카 역사에 대해 들었다. 다비드 씨는 엄청나게 기타를 잘 연주했고, 세세한 역사를 꿰고 있다. 적도 기니(República de Guinea Ecuatorial)에서 왔는데, 아프리카 중 유일하게 스페인 식민지였다고 한다. 바벨 2층에서 하늘을 봤다. 구름이 파란 하늘을 한 움큼 쥐고 간다. 참 빨리도 간다.

5.17
바벨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주구장창 잠만 잤다. 주구장창은 의태어 같고 주야장천은 그냥 한자어 같다. 점심엔 아브델 하디랑 담배를 몇 모금 폈다. 담배 인심이 좋은 곳이다. 비는 여전히 많이 내린다.

마음에 살던 그리움이 하나둘 제 갈 길을 가면 그리움 머물던 자리마다 움푹 페인 자국들만 남아 한참 들여다본다. 어느 날 소나기 내리고 갠 날, 물이 고이면 비춰오는 얼굴들 떠오르고. 메마른 마음 보다는 북적대던 그리움. 너 그리고 그. 한 뼘쯤 되려나, 무수히 많은 네가 머물다 갔지. 그때 조잘거리던 소리.들. 지붕을 계속 두드리네.

5.18
바르셀로나를 떠나, 바벨을 떠나 프랑스로 향했다. 비는 여전하다. 바벨에 살던 이들의 페이스북 주소와 이메일 주소를 받았다. 꼭 한 번 다시 보고 싶은 사람들이다.

히샴 Hicham, 아브델 하디 Abdel Hadi, 다비드 David , 라몬 Ramon, 다하 Daha,

엽서를 샀다. 엄마의 기대가 멀리 있는 아들한테 엽서를 받는 건가 보다. 전화할 때마다 엽서를 보내라고 하신다.

마타로(Mataró)에 와서 텐트를 쳤다. 아무도 지나지 않을 곳 같다. 멀리 지중해가 벽처럼 서 있다.

5.19
아침 일찍 어느 아저씨가 텐트를 치워달라고 했다. 일하러 퍽 일찍부터 나왔고 하필 텐트 친 곳이 입구였다. 행동이 더딘 게 영 못마땅했던지 텐트 주변 풀들을 성가시다는 듯이 벴다. N11 도로를 타고 헤로나(Girona)까지 왔다. 어느 해변에서 낮잠을 청했다. 버프를 쓰고, 헬멧을 베게 삼아. 지나는 이 중 누군가 닌자냐며 조롱했다.
내내 오르막이었다. 60km 정도를 달렸을 뿐인데 엄청나게 피곤하다. 돌아가면 1년은 빵을 먹지 말아야지 생각하다, 아예 ‘냄새도 맞지 말아야지’라고 다짐해 버렸다.

5.20
피게레스(Figueres)에 도착해서 달리 미술관을 둘러봤다. 월요일은 본래는 휴관일 인데, 스페인 휴일일 때는 문을 연다고 했다. 여하튼 운이 닿아 관람할 수 있었다. 광대와 이름씨가 먼저 관람을 했고, 자전거를 보고 있다가 나중에 들어갔다. 벤치에 앉아 있다, 독일에서 온 노부부를 만났다. 그들도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짐이 조촐해서 물었더니, 캠핑카로 여행 중이란다. 편하다고. 캠핑카보다 백발 성성한 그들이 여전히 함께 있는 게 부러웠다. 나중에 독일도 갈 거라고 했더니, 하이델베르크에 꼭 가라며 계속 엄지를 치켜든다. 50km 정도를 달려서 라 홍케라(la jonquera)에 도착했다. 50년 된 전통 있는 식당. 여기에서 스페인 대표 음식이라는 ‘빠에야’를 먹었다. 무려 15.55유로. 너무너무 짠데 물은 따로 돈을 받는 바람에 밖에서 수돗물을 한 대야는 마셨다.

스페인에서 마지막 밤이다. 밖 온도는 섭씨 13도인데 텐트 안은 사람들의 온기로 따뜻했다.

5.21
오전에 스페인과 프랑스의 경계를 넘었다. 첫 번째 만난 빵 가게에서 빵을 샀다. 엄청나게 맛있다. 국경을 넘자마자 거짓말처럼 비구름이 개고 햇살이 내비쳤다. 페르피냥(Perpignan)까지 오면서 스페인과 가장 큰 차이는 갓길과 자전거 길이 사라졌다. 페르피냥 인근에서 오렌지 텔레콤을 통해 전화기를 개통했다. (아마도 33 – 6 – 3607 – 1112 어쩌면 33 – 06- 3607 – 1112) 통신비가 엄청 비싸다는 절망감에 여권을 두고 나왔다. 밖에서 멍 때리는데 자네들 여권 어딨냐며 친히 가져다줬다. 페르피냥에서 나르본까지 가는 길은 처음과는 달리 최악이다. 태풍처럼 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더는 갈 수 없어 일찍 텐트를 쳤다.

5.22
나르본(Narbonne)까지 역풍인지 옆풍인지를 뚫고 왔다. 자전거 길로 조성된 곳을 달렸는데, 오솔길을 중심으로 한쪽엔 강이 한쪽엔 바다가 놓여 있다. 바람 빼고는 장관이다.

프랑스는 상대적으로 화장실 인심이 박하다. 큰 마트에 가도 화장실이 없다고만 한다.

갓길엔 토끼의 죽음도, 너구리의 죽음도, 찌부러진 콜라 캔도 있고, 어느 구두 한 짝도 있다. 버려져 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빠진 기분이다. 가도 가도 갔던 길 갔고, 돌아 다시 그길 같고 아까 봤던 차가 또 보이고. 혹은 긴 악몽을 꾸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깨지 않는 꿈. 아무 준비도 기대도 없던 여행은 너무 바보 같다는 걸 깨달았다. 달리는 동안은 그래도 즐겁다. 자전거가 있어서 다행이다.

5.23
여전히 이상한 나라를 못 빠져나오고 허우적대고 있다. 바람은 일상을 영유할 수 없을 만큼 부는데 이곳 사람들은 내 낯섦이 당연하고 이방인만 당황 속에서 푸념할 뿐이다. 준비 없는 여행은 바보 같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여행을 일찍 접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몸이 힘들어서가 아니라 답답하다.

빨래방에서 주정뱅이와 시비가 있었다. 너무 참기 어려웠고, 모든 상황 속에서 가장 힘들었다. ‘죽여 버려’라는 말과 동시에 ‘참을인을 그려’라는 소리가 들렸다. 참을인은 안 떠오르고 칼도만 그려졌다.

된바람이 사흘째다. 비까지 내리면서 옷이 젖었고, 추웠다. 바람은 해가 져도 그치지 않는다. 한 달을 길 위에서 보내면서 잃은 것은 배려고 는 것은 ‘화’다. 짜증과 달리 화가 나고 있고 내내 참아 내는 게 여간한 게 아니다. 이전에는 화를 어떻게 풀어냈는지 모르겠다. 유달리 화를 참기 어려운 날엔 지허 스님의 ‘사벽의 대화’를 읽는다. 이게 모면인지 푸는 건지 아직 모르겠다. 원인조차도 모르겠다. 그래서 여전히 답답하다. 다만 여기에 깨달음을 얻으려고 온 것도, 고행하려고 한 것도 아니다. ‘뭔가를 해봐야지’ 혹은 ‘해보고 싶다’이런 생각조차 없이 이국에 있다 보니 ‘모든 게 건성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삶도 생각도 말도 건성이다. 사람을 대하는 것도 매한가지다. 그러니 다스릴 수 있는 게 없다.

코펠에 물을 담아 숲에서 목욕을 했다. 목욕인지, 풍욕인지, 고양이 욕인지 무어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조금 개운해 졌지만, 추위로 한층 더 오그라들었다.

종아리 화상이 하얗게 일며 벗겨졌다. 속살도 이미 까맣게 타서 닦다만 비누거품처럼 보인다.

5.24
달리는 중에 우박과 차가운 비를 만났다. 손끝부터 발끝까지 시렸다. 더는 달리고 싶지 않았고, 마음까지 지쳐 일찍 쉬기로 했다. 다행히 비를 피하려고 온 마을에 게스트 하우스가 있어서 머물기로 했다. 생 쿠아트 두드(Saint-Couat-d’Aude)라는 작은 마을이다. 이름씨와 광대는 계속 달리기로 했다. 내일 카르카손에 있는 인포메이션 센터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모처럼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면도를 했다. 적당히 몸에 한기가 가신 뒤 마을을 둘러봤다. 그 흔한 빵 가게조차 없는 작은 마을이지만 곳곳의 정원이 잘 꾸며져 있고, 집집이 개와 고양이가 함께 있는 게 예쁘다.

여행 잡문

5.3
마드리드 출발
임도를 타다 N-320 도로로 나왔다. 도토리나무 아래서 이름씨가 싼 점심을 먹었다. 이런 호화로운 음식은 당분간 기대할 수 없을 듯.

첫 번째 텐트.
이래 봬도 도마뱀도 토끼도 있는 곳. 루친은 이베리아 반도가 토끼의 땅이라고 했다. 사람이 버린 땅이 저들에겐 안전하고 풍요로운 곳이 된다.

내내 편하게 있다가 뙤약볕에서야 왜 자전거를 타고 있나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자청한 고난도 그 누구를 위한 헌신은 아녔다
나를 위한 헌신, 나를 위한 희생, 나의 자기 부정”

5.4
느지막이 텐트를 개고 출발.
중간에 잠시 쉬면서 어디가 정주행일까? 길 위에서는 옳고 그름이 없을 테니, 저것은 역주행이 아니라 분명한 목적지를 향해 가로지르는 것처럼 보인다.

트레일러 무게는 지금 내가 지고 있는 삶의 무게처럼 온다. 수건 한 조각도 버리지 못하면서 마음을 비워야지라고 생각한 게 한심하다. 계속 이고가야 할 것들. 그 한 가운데 마음하나가 있다. 시처럼, 사랑했던 자리마다 폐허가 아니라, 내가 폐허였다. 왜 여기에 왔을까? 계속 물음만 반복된다. 자전거가 온갖 궁상을 떨어버릴 거라는 기대는 기를 써도 앞으로 나가지 않는 상황에서 내 긴 시간을 압축한 것만 같다. 달리면서 내내 그리운 것들은 먼 데 있어도 여전하다.

두 번째 텐트는 공원 언덕에서.
9시나 돼야 해가 진다. 날이 어제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따뜻해 졌다.

5.5
초행의 정적을 깨는 것은 헉헉대는 숨소리뿐이다. 그 안에서 먼 곳을 돌아도 그곳에 네가 있기를 바라본다. 바라다, 본다. 보이는 듯하다. 신기루처럼. 사막 여행자에게 신기루는 오아시스였을 것이고, 자전거 여행자에게 신기루는 내리막길일 것이다. 저 앞에 신기루가 있다. 신기루처럼 무언가 있는 게 아니라 앞서 지나는 차들이 물웅덩이 폐인 곳에서 사라진다. 조금만 더 가면 내리막길이구나라는 확신이 든다. 조금만 더 조금만. 그곳에 도착하면 또 오르막이다. 이상하다, 이상하다, 반복 속에서도 체념하지 못한다. ‘이번엔 제발’ 이런 기대감으로 멈출 수 없다.

오르막이 이렇게 힘들구나. 새삼 깨닫는다. 내 바람도 신기루일까 무섭다. 거기에도 네가 없으면 어쩌나 하는 무서움. 감정의 옹졸함이 길 위 곳곳으로부터 베인다. 바람(願)은 바람(風)이 아니듯 내 원망은 끝끝내 願望이다.

어제는 악몽을 꿨다. 슬픈 꿈이었다. 마음이 아팠고 몸이 아렸다. 잠을 설칠 때마다 안부가 궁금하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가지 못하는구나.

무게는 그것이 어떤 것이든, 뒤돌아 볼 여지를 주지 않는다. 옆에 아무리 근사한 풍경이 있어도, 지나는 차들이 경적을 울리며 응원을 던져도 묵묵히 땅을 보며 페달을 굴린다. 광대와 이름씨는 이종이산인냥 멀어져갔다. 땀방울이 뺨을 타고 흘러 아스팔트에 떨어지고 그 위를 바퀴가 지난다. 땅바닥 말고 주위를 볼 수 있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싶었다.

종아리에 화상을 입었다. 분명 7부 자전거 바지를 샀는데, 겨우 무릎에 걸쳐진다. 후시딘을 가져왔는데 처방을 읽어보니, 여드름부터 화상까지 흡사 만병통치약 같은 기운을 풍긴다. 왼쪽 가슴 아래께에도 통하는 약이면 좋겠다.

스페인 고속도로는 오토비아와 오토피스타가 있다. 오토비아는 자전거가 갈 수 있는 길이라서인지 갓길이 퍽 넓다. 거기에서 수없이 많은 죽음을 봤다. 로드 킬은 어디서나 매한가지. 길 위에서 죽어간 모든 이들에게 애도를, 드넓은 대지에 묘비조차 없는 이들에게 다시 한 번 애도를.

이름씨가 넘어지면서 크게 다쳤다. 부랴부랴 약을 바르고 잠시 쉬는데, 어디선가 고속도로 순찰 오토바이가 온다. 이미 사고가 있다는 걸 알고 온 눈치다. 지나는 차들이 대신 신고를 한 듯. 우리는 그 흔한 전화기조차 없다. 앰뷸런스를 계속 부르는 게 어떻겠냐고 묻는데 됐다고 했다. 비쌀까봐. 옆으로 넘어지면서 광대뼈와 무릎을 다쳤다. 버프위로 피가 스몄다. 일찍 텐트를 쳤다.

이곳은 어디나 지평선과 하늘이 맞닿아 있다. 구름은 별 수사 없이 그림처럼 있고, 우리는 사람이 떠난 자리에 혹은, 지평선 한 자락에 집을 짓는다.

텐트를 친 곳. 곳곳에 개미집이 있다. 멍하니 보다, 개미들의 분주함에 잠깐 경외가 일었다. 움직임 자체가 소명인 듯싶다. 길은 끝이 없고, 목적지는 딱히 없다. 가는 곳 어디에도 반기는 이 없고, 낯섦과 그 감정을 억누르는 이국의 풍경만 있을 뿐이다. 여기는 내내 풍경으로만 온다. 때론 그조차 견뎌야 한다. 이국의 말은 닿지 않고 내 언어의 궁색함으로 그저 바라볼 뿐이다.

자전거를 타면서 비로소 책을 들춘다. 마드리드에서 편하게 있을 때는 통 손에 잡히질 않았다. 장석남의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을 가지고 왔다. 오래전 처음 집을 떠나면서 챙겼던 책이다. 그때가 그리워서가 아니라, 위로받았던 기억으로 짐 한구석을 차지했다. 이상하게 자꾸 황지우의 시구가 맴돈다.

5.6
12시가 다 돼서 느지막이 출발. A-2 도로에서 N-211로 이동. 구릉 지대를 계속 달렸다. 처음으로 마실 수 있는 물을 발견했다. 물맛이 좋다. 조금 내려와서 해발 1,300미터 지점에 텐트를 쳤다. 안쿠엘라 델 듀카도(Anquela del Ducado). 밖은 추웠지만, 텐트 안은 따뜻했다. 스페인에서 가장 낮은 기온을 기록했던 지역이란다. 5월이지만 사람들 옷차림이 마드리드와는 사뭇 다르다.

이름씨와 광대가 만든 김치가 엄청 맛있게 익어서 한 번에 다 해치웠다. 하루 이틀 지나면 더 감칠맛이 돌 텐데 그냥 허겁지겁 먹었다.

5.7
몰리나 데 아라곤(Molina de Aragon)을 지나며 잠시 쉬었다. 작고 아름다운 도시다. 산타 마리아 성당이 있는데, 알던 곳과는 다르니 이곳에 있는 게 뭔지 잘 모르겠다. 처음으로 오래 머물고 싶은 곳이었는 데 잠깐 둘러보고 지났다.

몬레알 델 캄포(MONREAL DEL CAMPO)에 왔다. 웜 샤워를 통해 하루 묵게 됐다. 웜 샤워는 자전거 여행객들이 하루 묶으면서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쉬는 데서 시작됐다. 오래전에는 종이로 돌았다고 하던 데 이제는 웹사이트를 갖추고 서로 정보를 나눈다. 몇 명이 얼마나 머물 수 있는지, 어떤 공간을 사용할 수 있는지 미리 알리고 서로 배려한다. 기록상으로 200년 이상 된 집이라는 데 200년 된 나무의 나이테처럼 벽이 두껍다. 아주 편하게 머물며 쉬고 있다.

편안함은 금세 화두를 날린다.

마드리드 여행 1

사진은 다음 인터넷이 되는 곳에서! 🙂

4월 24일 출발 25일 마드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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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몇 시간 후 출발인데, 제 자전거에 문제가 생겨서 부랴부랴 휠셋 교체. 광대는 페니어 연결, 이름씨는 다시 한 번 이것저것 꼼꼼하게 체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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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에로플로트로 모스크바를 거쳐서 마드리드로 들어왔어요. 인천공항까지 1년여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스캥크와 찬성씨가 짐 셔틀을 해줬어요. 셔틀로 맺어진 우정이랄까. 슬아의 제주도 빵 셔틀 이후 최고로 고마운 사람들이에요.(구석에서 비대칭, 말야씨 잊지 않고 있어요!!!) 자전거 박스 4개를 구했고, 개당 23kg으로 맞췄지만, 뭐 오차도 착오도 있기 마련. 공항까지 낑낑대면서 겨우 가져와서 대형 수화물로 보내는데, 대한항공 직원이 트레일러는 자전거가 아니라면서 이번만 보내주겠다고 하네요. 다음부터는 가로세로 길이를 재겠다고. 뭐 여하튼 고마워하면서 통과. 인천공항 탑승동에서 인터넷 면세점에서 산 고글을 찾고, 모스크바로!!!

P4240093.JPG?imgmax=1000 무엇보다 기대하고 있던 기내식이에요. 이름씨가 미리 주문해 뒀고, 비건을 위한 메뉴랍니다.

P4240102.JPG?imgmax=1000 P4240104.JPG?imgmax=1000 P4240105.JPG?imgmax=1000 두 번째 기내식이에요. 마드리드까지 9시간 걸린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는데, 모스크바까지 9시간이었어요. 기내식 놓칠까 잠을 설친 거 빼고 큰 불편은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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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모스크바 공항에 도착, 새로 지은 공항이라서 이런저런 부대시설이 잘 갖춰져 있고, 중간에 큰 바가 있더군요. 환승하는 데 다시 짐 검사를 하면서 이래저래 30분 정도 보낸 것 같아요. 1시간 연착이어서 마드리드행을 못 타면 어쩌나 싶었는데 다행히 잘 탑승했어요.

P4250118.JPG?imgmax=1000인천-모스크바 때 탔던 비행기보다는 기체가 훨씬 작더군요, 제주도 갈 때 탔던 이스타 항공과 엇비슷하달까요. 세 번째 기내식입니다. 역시 비건을 위한 메뉴.

전반적으로 기내식은 기대 이상으로 맛있었는데, 다만 양이 너무 적었네요. 한 번 더 먹고 싶었지만, 말이 안 통하니 사람이 얌전해지더군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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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드를 둘러싼 그레도스 산맥(sierra de gredos)이라는 군요.
마드리드에 들어왔어요. 비행기에서 머물 호텔을 알아보고, 친구가 예약해서 예약권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다고 입을 맞췄는데, 입국서류 같은 것도 없고 그냥 도장 찍어주고 끝이네요. 뭐 한 마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통과.

수화물 기다리는 데 맨 처음 우리게 나와서 바로 찾았네요. 모두 대체 저건 뭔가 하는 표정들이 압권이었지만 카메라를 함부로 들이댈 수 없어서 말이죠.

 

도착한 게 마드리드 시간으로 밤 11시 30분이 넘었을 때라서, 아침에 움직이자는 생각으로
공항 구석에 자리 잡고 천천히 자전거 조립을 시작. 갑자기 ‘빌라 리베라시옹’을 들고 어떤 건장한 남자가 나타났어요. 해방촌 빈집에 잠시 살았던 루친이 애인과 함께 마중을 왔어요. 일면식도 없는데, 광대가 혹 마드리드에서 이런저런 도움을 받을 수 있겠느냐고 했더니, 직접 공항까지 왔답니다. 무차스 그라시아스(¡muchas gracias)!!!!!

차는 이미 끊겼고 움직일 방법이 없다고 해서 공항에서 밤을 보내기로 하고 다음날 루친네 집 근처인 ‘트레스 깐토스’역에서 만나기로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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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천천히 자전거 조립. 드디어 엄청난 박스 내용물이 제 모습을 다 갖췄네요. 의자에 기대서 모두 잠깐 잔 다음에 드디어 출발. 루친이 찾아오는 법을 가르쳐 준 대로 겨우 메트로 타는 곳까지 갔지만, 역무원이 자전거 탑승이 안 된다면서 오전 10시 이후에 탈 수 있다고 하네요. 혹시 자전거를 타고 갈 방법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하나같이 고속도로라면서 메트로만 공항을 빠져나갈 수 있다며 손사래를. 이 뭐 섬도 아니고. 길이 있는 곳은 어디에나 샛길이 있다는 광대의 지론을 따라 겨우 공항을 빠져나와서 샤마르텡역까지 무사히 도착. 아 그런데 물도 없고, 배는 직살라게 고프고 역안에 있는 것들은 오질라게 비싼데도 먹을 수 있는 건 없고. 날은 예상과 다르게 조금 쌀쌀. 기내식 이후로 아직 음식 사진이 안 나오고 있잖아요. 식도락 여행인데 이렇게 굶주려서야. 여하튼 길에서 쓰러지려는 찰나, 저지를 빼입은 아저씨가 ‘팔로 미 프렌드’하면서 아주 싼 슈퍼로 안내해 줬어요. 다들 왜 이렇게 친절한 거야 ㅠ. 먹느라 정신이 없어서 아무것도 못 찍었네요. 여하튼 빵집에서 바게트를 과일 가게에서 바나나, 사과, 토마토를 잔뜩 사서 다 해치우고, 너무너무 졸려서 따뜻한 볕이 있는 곳에서 잠시 꿀잠을 잤네요. 이것이 지중해(근처)의 햇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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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친과 만나기로 한 트레스 깐토스로 출발. 인간 내비게이션인 광대를 잘 쫓아 무사히 도착. 마드리드 시내 자전거를 타면서 단 한 번도 차의 경적을 듣지 못했고, 보행자는 차를 보지 않고 그냥 횡단보도를 건너고, 차는 그게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멈추고. 대단히 인상적이었어요. 생각해 보면 당연한 건데, 당연한 것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가 직접 보니, 감개무량입니다. 마드리드의 첫인상은 맑고, 친절하고, 과일이 싸고, 빵이 맛있고, 등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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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친네 가는 길에 근처라고 해서 어머님댁에 들러서 인사를 했네요. 엄청 예쁜 집이에요. 특이한 건 엘리베이터 문이 2개라서 바깥문을 직접 여닫아요. 문을 닫으면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면서 움직이고, 엘리베이터가 문이 열리면 바깥문을 열고 나가는 구조예요. 루친의 방을 보세요. 한국어를 스페인어로 번역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말하기는 어려워하지만, 읽기 쓰기는 아주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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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루친네 집으로. 지하 주차장에 자전거를 두고 들어왔더니 신선태가 우리를 환영하기 위해서 봐준 상입니다. 엄청 복 받고 있어요. 살면서 좋은 일을 많이 했나 봐요. 특히 광대와 이름씨가 많이 했을 거예요. 신선태는 멕시코에서 왔고, 갸토는 콜롬비아에서 왔어요. 우리는 김치, 스페인에서는 ‘빠따따(감자-patata)’라고 하고, 멕시코에서는 데낄라, 콜롬비아에서는 위스키라고 한 다네요. 한 참 다른 말들이지만, 사진 속 모양은 같아요 🙂

muy bueno Madirid (무이 부에노 마드리드)

4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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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잠을 자고 일어나서 아침.

천천히 자전거는 꽁꽁 묶어두고, 렌페를 타고 누에보 미니스테리오스 역까지 갔어요. 캠핑 장비를 아직 준비 못 한 게 있어서 역 근처에 데카슬론 매장을 찾아서 말이죠. 데카슬론은 아웃도어 용품 할인 매장이에요. 역 앞은 차들이 다니는 모양새도 거리도 청계천 냄새가 물씬 풍기는 데 둘러보면 건물은 바로크 양식인 게 좀 다르다면 다를까요. ㅋ 엄청 큰 국회 같은 곳이었어요. 야심 차게 찾아들어 갔지만, 골프전문 매장이더군요. 캠핑을 위한 버너와 가스 등등을 사려고 했는데, 오늘은 꽝. 외곽에 있는 매장에 캠핑용품이 있을 거라고 하더군요. 다음에 다시 가기로 하고 통과, 근처에 자이언트 매장이 있어서 타이어를 바꾸려고 들어갔는데, 엄청나게 슈트를 잘 차려입은 매니저가 유창한 영어로 대해줬지만, 너무 비싸서 포기했네요. 슬릭 타이어를 달고 왔는데, 몇 번 미끄러질 뻔했어요. 트레일러 무게를 자전거가 감당을 잘 못해서 말이죠. 그래서 그냥 깍두기로 가자고 하고 적당히 싼 타이어를 찾아보려고요.

루친과 갸토와 함께 사진.

아나키 채식 바에 가기로 하고, 다시 솔 광장까지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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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즈비언 집회가 있어서 몇 장 찰칵(얼굴 나온 사람들은 허락받았어요). 스페인은 2005년 동성 간 결혼이 합법화됐음에도, 동성애 차별과 혐오가 만연하다고 하네요. 물론 그 정도가 다르겠지만요. 스페인이 아무리 우경화되면서 호모포비아가 덩달아 가시화되는 것 같아 보여도 마포구청 같은 짓을 하지는 않아요. 게다가 ‘동성간의 간음’ 처벌이라는 어처구니없는 개정안 같은 걸 생각해 보면 남한보다는 훨씬 낫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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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키 노동자 연대, 여기서 새삼 놀란 것 중 하나는 흑적기가 여기저기에 널렸다는 거예요. 조만간 바르셀로나에 가면 더 와닿을지 모르겠는데, 여하튼 <카탈루냐 찬가>에서 그려진 모습이 아주 조금은 남아 있는 것 같아서 살짝 흥분돼요. ㅎㅎ 마드리드에 와서야 스페인어를 왜 배우려고 하지 않았는지 무척 부끄럽고 후회돼요. 겨우 부에노스 디아스(Buenos dias)라고 말하는 정도. 아니면 올라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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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친이 안내한 곳은 아나키 도서관이에요. 아나키즘 관련 서적을 퍽 많이 보유하고 있고, 동물권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더군요. 재미난 건 길을 가다 보면 엄청나게 많은 종의 개들을 만나게 되는데, 이름씨 말마따나, 아이들은 부모를 닮았는지 모르겠는데, 개는 부모를 아주 똑 닮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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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여행은 원래는 자전거와 식도락 여행이었으나, 둘이 같이 가지는 못하고 있어요. 자전거는 여전히 주차장 구석에서 누추하게 있어요. 그러나 식도락은 포기하지 않고, 다음에 간 곳은 바 쿠닌! 바쿠닌에서 이름을 딴 바였어요. 나중에 주변 누군가 엄청 부자가 돼서 이런 바를 열면 좋겠어요.

바쿠닌 (아나키 채식 바)
아나키즘과 채식의 연결. 여기서 일하는 분들한테 남한에서 왔고, 독재자의 딸이 대통령이라고 했더니 스페인과 비슷하다며 웃더군요. 프란시스코 프랑코와 그의 딸 카르멘 프랑코때문에? 왜 그렇게 말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여행하면서 그곳의 역사를 잘 모른다는 게 이렇게 부끄러울 줄은. 같은 걸 봐도 시야가 좁아서 행간을 놓치게 돼요. 당연히 감탄도 줄 수밖에요. 느는 건 오직 밥! 에스페란토 모임과 바스크 어 포스터. 처음엔 팔레스타인 해방연대의 레일라 카흐레드인가 하며 좋아라했는데, 전혀 아니래요. 물어봤는데, 뭐라 뭐라 스페인어로 당연히 뭔 소린지 못 알아들었어요. 통과.

밥도 먹었고, 바쿠닌 구경도 잘했고, 얼추 11시가 다 돼서 집으로 가나 했지만. 무슨 시 낭송회에 갔어요. 뭔 놈의 시 낭송을 밤에 하는지 모르겠지만 말이죠. 낮에 루친이 오늘 시 낭송회가 있다고 하더군요. 뭔 시를 낭송할까 하는 궁금증이 생겨서 물어봤더니, 얼마 전 작고한 호세 루이스 삼페드로를 기리면서 각자의 시를 읽거나, 그의 글귀 중에서 좋아하는 구절을 읽는다고 하더군요. 한국어로 하나 번역된 게 있어서 읽어 봤다고 했더니, 엄청 놀라워하면서 반가워하더군요. <레즈비언을 사랑한 남자>라고 2006년 인가 번역된 게 있었고, 사실 큰 감흥이 없었던지라 고만고만하게 작가와 제목만 겨우 기억하는 정도예요. 그런데 그에 대한 감상을 말하라고 해서 엄청나게 손사래, 루친이 시를 발표하고 나서 수르 꼬레아에서 온 친구가 샘페르도를 알고 기린다고 소개를 했나 봐요, 사람들이 계속 손뼉을 치더군요. ^^;;;; 앞으로 좋아할게요.

4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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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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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하고 티센-보르네미사 미술관 방문
다시 렌페를 타고, 자전거는 고이 주차장에 묶여 있을 거예요! 이름씨가 공들여 준비한 미술관 일정이었어요. 프라도 미술관에 갔다가, 티켓 줄이 엄청나게 길어서 티센-보르네미사로 옮겼는데 무려 12유로. 여기는 스트로보만 금지고 사진 찍는 걸 허용하더군요. 오만 신기한 사진들을 찍었어요. 나중엔 배터리 방전으로 스마트하지 못한 폰으로 몇 장 찍었네요. 점심은 주먹밥. 아침에 먹은 밥에 김만 한 장 말았어요. 게 눈 감추듯 먹어치워서 사진이 없어요. 이름씨의 박식한 그림 설명과 눈에 익은 화가들 덕에 겨우 볼 수 있었는데, 의외로 듣도보도 못한 스페인 화가들의 그림이 와닿는 게 상당했어요.

티센-보르네미사를 구경하고 나서 허기를 참아가며 오만 빵 가게를 기웃 두유와 빵을 사서 탑골공원 같은 느낌이 물씬 풍기는 곳에서 허겁지겁 먹어치우고. 배가 차니 다시 구경할 기운이 조금 생겨서 레이나 소피아로 고고.

이름씨 광대와 함께 길을 걷다가 이름씨가 이쯤 되는 곳에 어떻게 자전거 샵이 하나 없냐고 말하면 자전거 샵이 나타나곤 해요. ‘우리 말고 동양인이 없어’, 그러면 동양인이 바로 보이는 식. 여하튼 우연히 만난 자전거 샵에서 할인하는 타이어 두 짝을 샀네요. 물론 우리 자전거는 지하 주차장에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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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시부터 무료라서 한 참 서 있다가 들어갔어요. 긴 줄은 무료 관람객들. 달리 전시도 하고 있는데, 고것은 못 봤어요. 무엇보다, 레이나 소피아엔 피카소 게르니카가 있어요. 세로 3.5미터 가로 7.76미터! 무지 크더군요. 맨날 엽서 쪼가리만 한 그림으로 보다가 실물을 보게 되니, 게르니카의 참상이 공포로 오네요. 그리고 무수히 많은 스페인 내전 당시의 자료와 아나키즘에 자료들, 바르셀로나 전체가 들썩였다는 두루티 장례식 영상도 있더군요. 얼마 전에 갔던 제주 4.3박물관에서는 친절하게도 김구와 이승만을 한데 묶어서 ‘우익’이라고 표기해 놓았던 데 그에 비하면 얼마나 세세하게 자료를 나누고 보관하고 있는지 놀라워요. 뭐 그런가 보다 하고 ,엔첸스 베르거의 <어느 무정부주의자의 죽음>에서 봤던 두루티의 모습은 감개무량이었어요. 책에서 글로만 보던 것들의 퍼즐이 조금씩 맞춰지는 것 같아서 엄청나게 신났어요. 레이나 소피아는 사진 금지. 몇 장 찍었는데, 방마다 있는 안내원이 천천히 걸어오더니 한 번 웃고 사진은 안 된다고 하네요. 다시 렌페를 타고 루친네 집으로. 아마도 자전거는 주차장에!

4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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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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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였어요. 유럽 최대라는 엘 라스뜨로(El Rastro) 벼룩시장이 일요일마다 서거든요. 무려 500년 역사라고 하네요. 별 의미 없지만 루친이 다닌 중학교는 750년이 됐다고 하더군요. 이름씨 지령에 따라 가방을 앞으로 메고 여기저기 닥치는 대로 사진을 찍었어요. 다만 너무너무너무 추워서 건성으로 찍고 쳐다도 안 봤더니 다 이상해요. 여하튼 본격 관광! 이름씨 광대와 함께 여행 중에 각별한 사람을 만나면 뭘 선물할지 고민하다가 부채를 준비했거든요. 흐흐 부채가 널렸더군요. 여기도 저기도 다 부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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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친과 만나서 오후에 꼭 가봤으면 하는 모임이 있다고 하더군요. 소르코 이 소르코라고 일요일마다 모여서 채식을 하고 시 모임을 연다네요. 날도 추운데 밖에서 뭔 시인가 했어요. 여기 사람들은 밤에도 낮에도 시인가 했는데, 씨였어요. 스페인 종자를 보호하면서 씨앗을 나눠주더라고요. 소르코(surco)는 밭의 이랑이라는 뜻이래요.

요 장소는 원래 상점이었고 재개발 예정이었지만 소르코가 스쾃을 했고, 가족 단위 시민의 참여가 꾸준해서 그냥저냥 계속해서 쓰게 됐다고 하네요.

 

걷다 보니, 마요르 광장(마요르가 뭔가요? 곳곳마다 있던데)이에요. 펠리페 3세의 기마상이라는데 왜 있는지는 모르겠네요. ^^: 딱하니 있더군요. 필리핀이 펠리페 2세에서 유래했다고 하네요. 끔찍한 제국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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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흑적찬란한 CNT(전국노동자연맹) 에 도착! 대단한 걸 하려고 온 건 아니고 채식으로 밥을 먹는다고 해서요. ^^:
스페인 내전 동안 CNT 가입 수가 200만에 달했던 게 80년이 지나서는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모양새였어요. 엄청 큰 문을 가지고 있는데, 예전에는 말을 타고 다녔다고 해요. 루친이 CNT 주요 강령은 노동자 자주관리, 연방제, 상호부조 경제의 실현이라고 계속 말하더군요. 뭔가 크게 경도되어서 말이죠.

아나코 생디칼리즘 상징인 흑적기 위에 CNT라고 잘 박혀있어요. AIT는 국제 노동자 협회의 스페인어 약칭이고요. 여기서는 회의를 마치고 채식하는 사람들이 함께 밥을 먹어요. 값은 낼 수 있는 만큼. 우리가 들어갔을 때, 저 동양인 3명은 대체 어디서 갑자기 나타난 걸까라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더군요. 게다가 뭐 카메라로 이것저것 신난 아이처럼 사진을 찍어 댔으니 ^^; 한참 지나고 나서, 루친과 갸토의 일행인 걸 알고 경계를 풀더군요. 물론 처음부터 친절한 루시아 씨도 있었어요. 말도 걸어주고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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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여기 밀고기는 고기보다 더 고기 같고 맛났어요! 광대는 지금까지 먹어본 밀/콩고기 중 최고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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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스 깐토스 역 앞 슈퍼에서 장을 보려는데 굳게 닫힌 문. 근처 까르푸로 가서 가장 싼 먹거리를 잔뜩 사서 들어왔어요. 가장 싼 먹거리는 까르푸에서 만든 것들. 결론은 싼 게 비지떡이라고 다음부터 이보다 한 단계 위로 사자였어요.

4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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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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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못 봤던 프라도 미술관을 관람했어요. 어마어마하더군요. 거의 모든 시기의 고야 그림을 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벨라스케스, 엘 그레코, 보쉬는 말할 것도 없고요. 4시간 정도 둘러보다 다시 들어갈 수 있다는 말에, 미술관 밖에서 점심 바게뜨를 먹었네요. 이름씨가 강조한 핵심은 콩고기. 두어 시간 정도 더 있다가 몸이 안 좋아서 저는 먼저 자전거가 있긴 있는 집으로 들어왔어요. 몸이 안 좋은 건 엄청나게 추워서예요. 지중해(근처)의 햇살은 어디로 가고 비만 주룩주룩 뭔 시도 때도 없이 내리는지.

한참 후에 이름씨와 광대가 김칫거리와 저를 위한 장을 봐서 들어 왔어요. 후무스(hummus)를 강조하면서 맛을 보라고 했는데, 짠 콩비지 같다고 했더니, 광대와 이름씨 눈에 섭섭함이 가득하더군요. 🙂 계속 먹어봐도 짠 콩비지 같은데 말이죠.

미술관 얘기는 나중에 따로. 먹는 것도 아니니 뭐.

4월 30일
오전 고추장 국 / 밥
오후 – 오전에 먹었던 것 / 콘플레이크

루친과 스쾃센터에 가기로 했는데, 루친 일정이 꼬여서 오전 내내 빈둥거렸네요. 오후 느지막이 드디어 우리 여행이 자전거 여행이었음을 깨닫고 곰팡내 나는 주차장에서 자전거를 꺼냈어요. 나오자마자 비가 주룩주룩! 여기 날씨는 제멋대로 인지라 도저히 갈피를 잡을 수가 없어요. 이왕 나온 거 가보자는 결정으로 데카슬론 가는데 금세 해가 나더군요. 추워서 청바지 입고 자전거를 탔더니 엉덩이 살이 보여서 바지 한 벌 사고, 추운 스페인의 4월을 견디기 위해서 두꺼운 티셔츠도 하나 샀어요. 엥 4월은 끝났고 5월도 추울 거라는 예상에 말이죠. 광대는 바람막이를, 그 외에 자전거 앞에 달 자전거 가방과, 버너, 사관절 락을 보조할 열쇠 등등 필요한 물건들을 잔뜩 샀어요. 스쾃 센터에 찾아가기로 하고 샤마르텡 역까지 가는 중에 훌쩍 10시가 넘어서 그냥 돌아섰네요. 오는 길에 마을 축제가 있어서 잠시 구경.

11시 반쯤 루친네 집에 돌아와서 신선태와 함께 늦은 저녁을 먹었네요. 메뉴는 된장국! 두부까지 들어갔으면 더할 나위 없지만, 이름씨는 있는 재료만을 가지고 최고의 맛을 뽑아내는 요리사예요. 어디서 수학했느냐고 물으면 ‘꼴메나 비오’에서 했다고 하기로! 🙂

콘플레이크 / 저녁은 데카슬론 다녀와서 1시 정도에. 된장국

5월 1일
11시 30분에 샤마르텡 역 근처에서 모이기로 했는데, 제가 늑장을 부려서 한참 늦었어요. 노동절이라 렌페가 한 시간에 두어 대 정도 있다고 들어서 역까지 엄청 달렸어요. 이름씨가 제일 잘 달리고, 그리고 광대 저는 처져서 겨우 따라갔어요! 소싯적에 육상했었는데 ㅠ 시간을 잘 못 알아서 결국 뛰면서 느긋하게 걷던 사람들과 트레스 깐토스 역에서 다시 조우. 집회 장소에는, 이미 행진을 시작했는지 텅 비어 있더군요. 물어물어 천천히 행진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또 겁나 뛰었네요. 이번엔 광대가 제일 잘 달리고 이름씨 그리고 저. 집회에 간다고 이렇게 뛰어보기는 난생처음이었어요.

여기 집회의 특이점은 청소차와 경찰이 한 조를 이뤄요. 사람들이 행진하면 뒤에서 경찰과 청소차가 따라오면서 거리를 확 휩쓸더군요. 청소라기보다는 뭔가 위협하는 기세랄까. CNT 주최 집회여서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는데, 연주도 구호도 훌륭했어요. 구호는 국가를 죽여라! 아나키 만세! 무에르떼 알 에스따도! 비바 라 아나뀌아! muerte al estado, viva la anarquia!
집회에는 개도 있고, 부모를 똑 닮은 개가 있고, 주정뱅이도 있고, 펑크도 있고, 아이들도 있고, 노인도 있고, 동양인도 셋 있었네요. 크게 다를 바 없는 집회였어요. 다만 여기선 바이올린을 켜고 플롯을 불어요.

다섯 시에는 나찌 집회 장소에 가서 대치한다고 하더군요. 친절한 루시아씨가 위험한데, 갈거냐고 묻더군요. 아마도 가게 될 거라고 얘기했는데, 어리버리 하는 사이에 모두 사라져 버렸어요. 루친, 갸토와 함께 나찌 반대 집회에 가겠다고 한참을 걸었는데, 도착한 곳은 채식 뷔페, 전혀 의사소통이 안 됐어요! 여하튼 겁나 짠 중국 채식뷔페에서 밥을 먹고 물어물어 다시 집회 장소인 추에카 광장으로 이동.

가는 길에 스쾃센터에 들렀는데, 저녁 7시에 문을 연다네요. 집회 끝나고 들르기로 했어요.

가는 길에 만난 공식 덕후 모임. ㅋㅋ 어디에나 덕후는 있어요! 세상의 모든 덕후들이여 단결하라! 루챠! Lucha!

나찌 집회는 겁나서 멀리서 한 장 찍은 게 다예요. 인종주의자들이라서 가까이 가지 말라는 무지막지한 경고 때문에 무서워서요. ㅎ

가까이 가면 경찰들이 마구마구 꺼지라는 듯 손짓해요. 나름 자전거 여행이고, 아직 자전거는 제대로 타지도 못했는데 쫓겨날까 봐 안으로는 못 들어갔어요(자전거는 아직 지하 주차장에 있어요.). 기자증을 찬 사람들만 별 제지 없이 들락거리더군요. 이곳에서의 구호는 나찌 반대였어요. 경찰 바리케이트에 막힌 CNT 사람들과 광장에 모인 군중이 서로서로 구호를 외쳐가며 응원하더군요. 어디에서나 자연스러운 흑적기!

추에카 광장! 추에카 역은 LGBT거리래요. 거의 대다수의 바가 게이 바거나 레즈비언 바라고 하네요.

스페인과 남한이 닮았다는 말을 경찰의 행태를 보고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네요. 저 총은 뭔가 했는데, 공포탄을 발사하더군요. 그리고 공포탄 발사하면서 몰이하듯 집회 군중을 향해 달려가고요. 불심검문이 계속해서 이루어지는데, 심지어는 누가 봐도 액세서리인데 그걸 문제 삼아 검문하더군요.

마드리드는 9시나 돼야 해가 져요. 계속 경찰과 CNT가 대치하고 있다가 하나둘씩 빠져나가고 우리는 스쾃 센터로.

노동절이라서 파티가 열렸는데, 우리 같은 어중이떠중이도 보이고, 어떻게 봐도 쟁이인 사람, 그리고 침낭 메고 온 사람들이 퍽 많더군요. 자전거 공방도 따로 있고요. 평시에는 이곳에서 요가도 하고 뭐 이런저런 일정으로 꽉 차 있는데 오늘은 빠르띠도(partido)!
광대의 얼굴이 오늘 내내 엄청 환하더군요. 피크는 여기 스쾃센터! 이름씨는 어떤 아줌마와 얘기를 하더니, 그 아줌마가 데려온 친구랑, 또 그 친구의 친구랑 끊임없는 대화를! 저는 담배 한 모금 빨고 죽을 것 같아서 내내 밖에 있고. 뭔 담배가 이리 독한지 죽다 살아났어요.

렌페는 끊겼고, 자전거는 루친에 집 지하 주차장에 있으려나. 1시간 10분 정도를 경보하듯 걸어서 버스 정류소까지 갔어요. 그리고 한 시간에 한 대 있다는 심야버스. 아저씨 운전이 청룡열차인가 했는데 내릴 즘에는 바이킹으로 바뀌더군요. 기사님이 다른데 내려주면 어쩌나 노심초사했는데, 여차여차해서 무사히 도착했어요. 광대가 지피에스를 켜고 우리 목적지에서 멀어지는지 가까워지는지 계속 확인. 숙소에 도착하니 4시더군요. 바로 누웠는데, 괜히 담배는 피워서 잠을 제대로 못 잤네요.

5월2일
계획상 내일이 마드리드를 떠나는 날이에요. 아침에 루친과 어머니 신선태, 갸토와 함께 아침 식사를 했어요. 모두들 굳어 있는 표정. 그러나 우리에게는 김치, 빠따따, 위스키, 데낄라가 있어요.

바르셀로나까지 가는 루트를 세 가지로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기로 했어요. 사라고사를 들르느냐, 발렌시아로 가느냐, 그냥 산을 가로지르느냐. 결국, 최단 거리인 산을 가로지르기로 결정!

일주일 정도는 전기도 물도 없을 거라는 예상에 우선은 3일 치 먹거리 장을 보고, 물건들을 다시 한번 정리 중이에요.

제 자전거 휠셋은 급하게 준비하면서 이런저런 문제가 있네요. 로터가 휘어서 손으로 대강 펴고 쓱쓱 거리는 소음은 무시. 바퀴가 브레이크에 철석같이 붙어서 안 떨어졌는데 그래도 좀 굴러가는 것 같아요. 내일부터는 드디어 자전거 여행이 시작돼요. 곰팡내 나는 주차장에서 나와서 한 것 없이 정비 중!

마지막 밥을 먹고 부랴부랴 글만 써서 올리고 출발!
엄청나게 맥이 끊기지만 나중에 사진을 기대하세요! ^^;; 원래는 사진에 대한 설명글이었는데, 스페인에서도 게을러서 말이죠.

워드프레스로 갈아타기

SNS와 관련한 몇 가지 테스트로 한없이 완벽했던 무버블타입에서 워드프레스로 왔다. 새삼 퍼머링크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아 그냥 다 되네 🙂

워드프레스 기본 퍼머링크 생성에서 dash(-)를 underbar(_)로 바꿨다. 별문제 없는데, IE에서 링크가 %인코딩으로 나타나는 바람에 테마를 살짝 수정했다.
워드프레스의 플러그인은 정말 플러그만 꽂으면 뭔가 다 되는 모양새다. 좋구나, 그렇지만 워드프레스 함수를 찾아보고 ‘대강’ 이렇구나 아는 데만도 소비한 시간이 만만치 않다.

1월만 되면 무슨 지랄처럼 블로그에 들러 이것저것 만지작거리는 병은 실은 서버 호스팅과 관련이 있다. 호스팅 기간 만료입니다. 라는 메시지가 잊었던 곳을 생각나게 한다.
동기는 낚싯대에 미끼로 걸린 귤과 같다. 얼토당토않지만 그로 생경한 일들이 널어지는 게 결국은 낯설지 않다. 1월은 회귀의 달이다. ㅋㅋ 다만 올해도 똑같이 반복된다는 걸 이미 알아버렸다는 게 조금 씁쓸할 뿐.

담배 피우면 못써 담배는 독약이야

호랑이 할아버지
어느 날
문익환 목사, 백기완 선생, 계훈제 선생
세 분의 통일 운동가가 거리를 걷고 있었어요
골목 모퉁이에서 중고생 세넷이
담배 피웠어요
에익 이놈들!
백 선생이 호통쳤습니다
하늘이 찌르릉 울렸어요
아이 깜짝이야!
문 목사가 껄껄 웃고
계 선생이 아이들한테 다가가
담배 피우면 못써, 담배는 독약이야!
타일렀어요
아이들은 달아났어요
백 선생이 탄식처럼 한마디 했어요
저 녀석들 시대에는 통일이 와야 할 텐데.
김규동 / 창비어린이 2010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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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선생이 저리 함께 걸을 때면 내가 꼭 저 중고생만 했을까. 아니면 그보다 훨씬 어렸을까. 그날 그러면 그 골목에서 그 꼰대들. ‘담배 피우면 못써 담배는 독약이야!’ 선생님 어떡해요. 그때도 아직도 독약을 물고 있어요. ‘저 녀석들 시대에는 통일이 와야 할 텐데’에서 빵 터졌는데, 발화와 쓰기의 간극이 엄청나다는 것을 자판을 두드리면서 깨닫는다. ‘저 녀석들 시대’는 여전히 변함없네. 선생께서 통일 담론을 녹차 우리듯 우리는 게 아니었다니. 선생님 문득 죄송해요.
그나저나 오늘은 6•15공동선언 10돌인데, 21년 만에 화생방 대비 민방위 훈련한다며? ㅋㅋ
3월 15일 날 점심 무렵 일어나서 눈곱 떼고 어기 적 택배 부치러 가는데, 글쎄 차들이 죄다 멈춰 있는 거야. 버스도 택시도 자가용도, 심지어는 신호등에 사람들도 꼼짝 않기에, 아 뭔가 큰 사고가 났나 했지. 근데 조용한 거야. 이쯤 되면 빵빵거리는 차가 있을 법한데, 대낮인데 그 큰 거리가 고요한 거야. 그 사거리에서 민방위 훈련한다고 사람도 못 움직이게 통제하더만. 횡단보도 건너는 데 막아서다라고, 지금 훈련 중이니깐 움직이면 안 된다고. 못 간다고. 지랄. 도저히 니들 장단에 못 놀아주겠다며 건넜지. 천천히 느리게 볕에 취한 듯. 나를 제지하러 도로를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달려오는 당신이 보였어.

그냥저냥

시 하나 읽고.
옮겨 써야지 했는데, 외우질 못했네.
책을 안 가져왔다는 말.
이번 창비 어린이에 김규동의 신작 두 편 실렸다.
좋더라.
문학 이란 게 적당히 거리를 두고 짝사랑이나 해야지. 안에 있자니 답답하고, 멀어지면 그립고. 밤마다 방안에서는 책을 숙주로 기생하는 말들이 짖는다.
진실은 트위터 테스트다.